천장 네 귀퉁이에 모기장을 매고 온 가족이 잤던 추억의 여름밤

“빨리 들어와. 모기 들어간다.”

어머니가 모기장 한쪽을 살짝 들어 올리면 아이들은 기다렸다는 듯 이불 위로 기어들어 갔다. 마지막 사람이 들어온 뒤에는 늘 작은 소동이 벌어졌다.

모기장 안에 따라 들어온 모기가 없는지 천장을 올려다보고, 희미한 날갯소리가 들리면 온 가족이 손뼉을 치며 한 마리를 쫓았다.

모두 잡았다는 확인이 끝나야 비로소 베개를 나누고 잠자리에 들 수 있었다.

한낮의 열기가 남은 방은 후텁지근했고 선풍기 바람도 한 사람에게 오래 머물지 못했다.

그래도 얇은 그물 안에 들어가면 이상하게 마음이 놓였다.

밖에서는 모기가 맴돌아도 안쪽은 가족만 들어갈 수 있는 작은 방이었다.

여름이면 천장 네 귀퉁이에 매달렸던 모기장은 벌레를 막는 도구이면서, 온 가족의 잠자리를 한곳으로 모으는 계절의 울타리였다.

1. 옛날 모기장은 왜 천장 네 귀퉁이에 매달았을까? (사각 모기장의 구조)

옛 모기장은 넓은 직사각형 그물의 네 모서리에 끈이 달린 형태가 많았다.

천장의 못이나 고리, 벽에 연결한 줄에 네 귀퉁이를 묶으면 모기장 안쪽에 넓은 공간이 생겼다.

바닥에 이불을 나란히 펴고 자던 생활 방식에서는 침대 하나만 덮는 둥근 모기장보다, 방 한쪽의 가족 잠자리를 통째로 감싸는 사각형 구조가 알맞았다.

네 모서리를 팽팽하게 당기는 것도 중요했다.

그물이 축 늘어지면 얼굴과 팔에 닿아 답답하고, 잠결에 몸을 뒤척일 때 틈이 생기기 쉬웠다.

모기장 아래쪽은 요나 돗자리 밑으로 눌러 넣거나 빈틈없이 여며야 했다.

아무리 촘촘한 그물이라도 출입구와 바닥 사이가 벌어져 있으면 모기 한 마리가 밤새 안에서 사람을 괴롭힐 수 있었기 때문이다.

2. 얇은 그물은 어떻게 모기를 막았을까? (모기장의 원리)

모기장의 원리는 단순하다.

공기는 드나들 수 있지만 모기의 몸은 통과하지 못할 만큼 작은 그물코가 사람과 벌레 사이에 물리적인 장벽을 만든다.

약을 뿌리지 않은 모기장도 그물이 온전하고 가장자리가 잘 닫혀 있으면 잠자는 사람에게 모기가 접근하는 것을 막을 수 있었다.

그래서 모기장은 펼치는 것보다 점검하는 일이 더 중요했다.

낮에 접어 두었던 모기장을 다시 칠 때는 작은 구멍이 생기지 않았는지 살피고, 찢어진 곳은 실로 꿰매거나 헝겊 조각을 덧댔다.

안으로 들어갈 때도 그물을 크게 들추지 않고 몸 하나가 통과할 만큼만 열었다.

현대의 방충망과 원리는 비슷하지만, 문과 창문이 아니라 잠든 사람 바로 둘레에 방어선을 만든다는 점이 달랐다.

모기장에 몸을 바짝 붙이지 않는 것도 생활의 지혜였다.

피부가 그물에 닿으면 바깥에 앉은 모기가 그 틈으로 물 수 있고, 축 늘어진 면이 들리면서 아래쪽이 벌어질 수도 있었다.

아이들이 모기장 가장자리에 붙어 자면 어머니가 안쪽으로 몸을 밀어 주곤 했던 데에는 이유가 있었다.

3. 침대 대신 온 가족이 모기장 안에 누웠던 이유

오늘날처럼 가족마다 침대와 방을 따로 쓰지 않던 집에서는 밤이 되면 안방이나 대청 가까운 방에 요를 이어 폈다.

큰 모기장 하나를 치면 여러 개를 마련하는 것보다 간단했고, 천장에 고리 네 개만 준비해도 온 가족의 잠자리를 한꺼번에 보호할 수 있었다.

자리를 정하는 데에도 집집마다 나름의 순서가 있었다.

어린아이는 어른 곁에 눕고, 늦게 들어오거나 새벽에 먼저 일어나야 하는 사람은 출입구 가까이에 자리를 잡았다.

한 사람이 밖으로 나가려면 옆 사람의 다리를 넘고 모기장 자락을 조심스럽게 들춰야 했다.

좁고 불편했지만 그 안에서는 하루 동안 미처 하지 못한 이야기가 이어지고, 누군가 부채를 부치면 가까이 누운 사람까지 함께 바람을 얻었다.

그렇다고 모기장 속 여름밤이 늘 낭만적이었던 것은 아니다.

장마철에는 그물 안의 공기까지 눅눅했고, 형제끼리 자리를 두고 다투기도 했다. 아기가 울거나 한 사람이 뒤척이면 모두가 잠에서 깼다.

우리가 그 풍경을 정겹게 기억하는 것은 생활이 편했기 때문이 아니라, 불편을 한 공간에서 함께 견뎠기 때문일 것이다.

4. 모기장과 나일론 섬유의 보급 (여름 살림의 변화)

모기장은 밤에만 모습을 드러냈다.

아침이면 끈을 풀어 한쪽으로 걷어 올리거나 곱게 접어 두어야 방을 생활공간으로 다시 쓸 수 있었다.

저녁이 되면 눅눅하지 않게 털고, 네 귀퉁이를 다시 매고, 이불을 펴고, 가장자리를 눌렀다.

모기 한 마리가 숨어 있지 않은지 확인하는 일까지 마쳐야 하루의 잠자리가 완성됐다.

1960년대 이후 국내 나일론 생산이 본격화하면서 나일론은 옷감뿐 아니라 모기장·우산·칫솔 같은 생활용품에도 널리 쓰였다.

가볍고 질긴 나일론 모기장은 접어 보관하기 쉬웠고, 물에 젖어도 비교적 다루기 편했다.

새 소재의 보급은 모기장을 더 많은 가정의 익숙한 여름 살림으로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했다.

5. 천장에 매달린 모기장은 왜 사라졌을까?

창문과 현관에 방충망이 설치되고 살충제와 전자식 모기퇴치용품이 보급되면서 잠자리만 따로 감쌀 필요가 줄었다.

아파트 생활, 에어컨 사용, 가족별 침실과 침대가 보편화된 변화도 큰 사각 모기장을 방 한가운데 치는 방식과 잘 맞지 않았다.

요즘에도 원터치 모기장이나 캠핑용 모기장은 사용되지만, 천장 네 곳에 끈을 걸고 온 가족이 함께 들어가 자는 풍경은 만나기 어려워졌다.

모기장이 사라진 자리에는 더 시원하고 편안한 잠자리가 들어왔다.

하지만 그와 함께 방 안에 잠깐 만들어졌다가 아침이면 사라지던 ‘여름의 작은 방’도 없어졌다.

그 안에서는 아버지의 기침, 어머니가 부치는 부채 소리, 형제의 잠꼬대가 모두 한 겹의 얇은 그물 안에 모였다.

모기장이 지켜 준 것은 모기에 물리지 않는 밤만이 아니었다.

서로의 숨소리를 들을 만큼 가까이 누워 하루를 마무리하던 가족의 시간이기도 했다.

네 귀퉁이를 묶은 가느다란 끈은 천을 매달았지만, 그 아래 모인 사람들의 기억까지 한데 묶어 놓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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