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사람을 불러 모으던 골목 평상은 왜 사라졌을까?

해가 기울어도 방 안의 더위가 빠지지 않던 여름 저녁이면 골목 한쪽의 평상이 먼저 자리를 폈다. 어느 집에서는 수박 한 접시를 내왔고, 지나가던 이웃은 잠깐 앉았다가 이야기 하나를 보태고 갔다. 아이들에게는 올라가도 되는 작은 무대였고, 어른들에게는 바람을 기다리며 하루 소식을 나누는 자리였다.

평상은 분명 누군가의 집에서 내놓은 물건이었지만 일단 골목에 놓이면 주인만 쓰지 않았다. 집 안의 살림도 아니고 완전히 공공시설도 아닌 채, 대문 안과 골목 사이에서 사람들을 잠시 이어 주었다.

평상은 왜 여름에 시원했을까

평상은 침상만 한 넓이에 낮은 다리를 달고, 여러 사람이 앉거나 누울 수 있도록 만든 나무 가구다. 한국민속대백과사전은 전통 평상 가운데 두세 부분으로 나뉘어 이동하기 쉽게 만든 것과 상판을 살로 짜 계절에 맞게 사용한 형태를 설명한다. 지역과 용도에 따라 크기와 짜임은 달랐다.

평상 자체가 차가운 바람을 만드는 것은 아니다. 몸을 뜨거운 땅바닥에서 띄우고, 상판과 아래쪽의 빈 공간으로 공기가 움직이게 해 땀이 마르도록 돕는 구조였다. 그늘진 처마 밑이나 나무 아래에 놓으면 햇빛을 피하면서 사방에서 들어오는 자연 바람을 받을 수 있었다.

국립민속박물관의 여름 생활 자료에도 그늘 아래 평상에서 낮잠을 자고 더위를 피하던 모습이 소개돼 있다. 에어컨이 없던 시절에는 집 안을 차갑게 만드는 대신, 사람이 바람이 드는 곳으로 나가는 것이 더 현실적인 피서법이었다.

앉는 가구가 어떻게 동네 사랑방이 되었을까

평상이 골목에 놓이면 여러 사람이 같은 높이에 마주 앉게 된다. 등받이와 칸막이가 없어 자리를 나누기도 쉬웠다. 잠깐 쉬던 사람이 안쪽으로 자리를 옮겨 주면 새로운 사람이 자연스럽게 끼어들 수 있었다.

그 자리에서는 반찬과 아이들 이야기, 동네의 경조사와 장사 소식이 오갔다. 아이들이 골목에서 노는 모습을 여러 어른이 함께 살펴보기도 했다. 정식 회의는 아니었지만 도움이 필요한 집과 동네에서 벌어진 일을 빠르게 알 수 있는 생활 속 연락망이었다.

물론 모든 골목이 늘 다정했던 것은 아니다. 늦은 시간의 소음이나 자리를 차지하는 문제로 불편을 느끼는 사람도 있었을 것이다. 골목 평상은 공동체의 상징인 동시에, 가까이 살아야 했던 사람들이 서로의 생활시간과 경계를 조절하던 공간이었다.

평상이 사라진 데에는 이유가 하나만 있지 않다

재개발과 아파트 보급으로 좁은 골목과 대문 앞 공간이 줄었다. 자동차가 골목 안까지 들어오면서 평상을 계속 펼쳐 두기 어려워졌고, 냉방기기가 보급되자 더위를 피해 밖으로 나올 필요도 적어졌다. 텔레비전과 스마트폰처럼 집 안에서 시간을 보내는 방법이 늘어난 것도 변화를 보탰다.

사생활을 중요하게 여기고 이웃의 생활에 함부로 관여하지 않으려는 태도도 커졌다. 과거의 평상에서는 자연스럽게 오가던 질문이 오늘날에는 부담스러운 간섭으로 받아들여질 수 있다. 평상을 치운 것은 낡은 가구 하나가 아니라, 집과 골목 사이의 관계를 정리하는 일이기도 했다.

흥미롭게도 ‘골목평상’이라는 이름은 다른 모습으로 다시 사용되고 있다. 서울의 일부 문화사업은 동네의 카페·공방·책방 같은 작은 공간을 사람들이 만나 문화를 나누는 ‘골목평상’으로 부른다. 실제 나무 평상은 줄었지만 이웃이 편하게 만날 수 있는 자리에 대한 필요는 남아 있다는 뜻이다.

그곳은 의자보다 조금 더 큰 공간이었다

골목 평상은 더위를 피하는 생활가구이면서 집 안의 이야기가 동네로 건너가는 경계였다. 누가 먼저 앉았는지보다 다음에 누가 와서 자리를 채우는지가 더 중요했다.

지금은 냉방이 잘되는 각자의 방에서 여름을 보낸다. 몸은 훨씬 편해졌지만 아무 약속 없이 이웃 곁에 앉아 하루 소식을 듣는 일은 드물어졌다. 골목에서 사라진 것은 나무판 몇 장이 아니라, 우연히 마주친 사람에게 한 뼘의 자리를 내어 주던 생활의 여백이었다.

댓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