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침 등굣길, 버스가 정류장에 들어오면 학생들은 책가방의 작은 주머니부터 뒤졌다. 그 안에는 돈처럼 접어 둔 가느다란 종이 묶음이 있었다. 점선을 따라 한 칸을 떼어 차장에게 건네거나 요금함에 넣으면 그것으로 차비가 끝났다. 현금도 영수증도 아니었지만 버스에서는 분명 돈의 역할을 했던 종이, 바로 회수권이었다.
회수권을 잊은 날에는 친구에게 한 장을 빌리기도 했고, 새 묶음을 산 날에는 남은 칸을 세어 보며 며칠을 탈 수 있을지 계산했다. 지금은 교통카드 한 장이면 잔액과 환승까지 자동으로 처리되지만, 그때의 학생에게 버스비는 눈으로 세고 손으로 떼어 쓰는 것이었다.
회수권은 왜 ‘표’가 아니라 차비였을까
회수권은 버스를 타기 전에 일정 횟수의 운임을 미리 낸 뒤, 탈 때마다 한 장씩 제출하는 선불 승차권이었다. 버스회사는 제출된 표를 다시 거두어 사용을 끝냈기 때문에 한 번 낸 회수권은 다시 쓸 수 없었다. 오늘날 교통카드가 전자정보로 승차를 확인한다면, 회수권은 인쇄된 종이 자체가 요금을 냈다는 증거였다.
국가기록원 자료에는 회수권이 초등학생·중고등학생·대학생·일반·경로용 등으로 구분돼 발행됐다고 나온다. 학교 서무과나 지정 판매처에서 학생용 회수권을 사는 방식도 사용됐다. 학생 할인 대상과 유효기간을 종이의 색이나 인쇄 내용으로 구별했기 때문에, 운전원이나 차장은 짧은 순간에 회수권 종류가 맞는지 확인해야 했다.
서울의 자료에서는 학생 회수권 제도가 1970년대부터 확인된다. 서울생활사박물관은 1979년 5월부터 학생용 토큰이 종이 회수권으로 바뀌었으며 국민학생·중고생·대학생용으로 나뉘었다고 설명한다. 지역과 시기, 버스회사에 따라 판매 방식과 모양에는 차이가 있었으므로 모든 회수권이 똑같았던 것은 아니다.
열 장을 열한 장으로 만들려 했던 이유
회수권은 간편했지만 종이라는 약점도 있었다. 물에 젖으면 인쇄가 번지거나 찢어졌고, 작은 조각이라 잃어버리기 쉬웠다. 요금이 바뀌면 새 회수권으로 교환하거나 정해진 기간 안에 사용해야 하는 불편도 있었다.
또 하나의 문제는 위조와 변조였다. 국가기록원에는 열 장으로 된 회수권의 폭을 조금씩 줄여 잘라 열한 장처럼 만들다 적발된 학생들의 이야기가 기록돼 있다. 추억담에서는 장난처럼 회상되기도 하지만, 실제로는 내지 않은 운임을 낸 것처럼 꾸민 부정 사용이었다. 종이의 크기와 무늬, 색, 유효기간을 자주 확인해야 했던 이유도 여기에 있었다.
회수권보다 먼저 널리 쓰인 버스 토큰에도 비슷한 문제가 있었다. 요금 인상을 앞두고 토큰을 미리 사 두는 사람이 생기자 색을 바꿔 발행하기도 했다. 현금을 직접 주고받는 불편은 줄였지만, 종이와 금속이라는 물건을 미리 만들고 판매하고 회수해야 하는 또 다른 관리가 필요했던 것이다.
회수권과 교통카드는 무엇이 달랐을까
1996년 서울에서 교통카드제가 본격적으로 시행되면서 버스요금은 종이와 금속에서 전자정보로 옮겨 가기 시작했다. 서울의 버스 토큰은 1999년 10월 폐지됐고, 회수권은 2007년에 사라졌다. 초기 교통카드는 버스와 지하철이 완전히 호환되지 않았지만 이후 하나의 카드로 요금과 환승을 처리하는 체계가 자리 잡았다.
회수권은 ‘이 사람이 몇 번 탔는가’를 종이 장수로 나타냈다. 반면 교통카드는 승차 시각과 교통수단, 잔액을 전산으로 처리한다. 운임을 미리 낸다는 점은 같지만, 회수권에는 환승 할인이나 이용기록을 자동으로 계산할 기능이 없었다.
작은 종이에 남은 등굣길의 계산법
버스 회수권은 단순한 옛날 표가 아니다. 현금을 매번 주고받지 않고도 요금을 처리하려 했던 초기의 선불 교통수단이었고, 학생 할인과 운임 관리를 눈에 보이는 종이로 해결한 방식이었다.
이제 버스에 오르면 카드 단말기에서 짧은 소리가 나고 요금이 자동으로 빠져나간다. 편리해진 만큼 차비가 손안에서 한 장씩 줄어드는 모습은 볼 수 없게 됐다. 회수권 한 칸에는 버스를 한 번 탈 수 있는 값뿐 아니라, 남은 등굣길을 손으로 세어 보던 학생들의 작은 계산도 함께 인쇄돼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