난로 위 양은 도시락이 겨울 교실의 추억이 된 이유

겨울 아침, 교실 문을 열면 칠판보다 먼저 눈길이 가는 곳이 있었다. 교실 한가운데 놓인 검은 난로였다. 아이들은 꽁꽁 언 손을 불 앞으로 내밀었고, 난로 위에는 집에서 싸 온 은빛 도시락이 하나둘 자리를 잡았다. 첫 수업이 시작될 무렵이면 난로 위는 이미 도시락으로 만원이었다.

그날 점심이 따뜻할지는 도시락이 놓인 자리에 달려 있었다. 맨 아래에 있으면 밥이 눌어붙을까 걱정됐고, 너무 위에 있으면 점심시간까지도 미지근했다. 쉬는 시간이 되면 아이들은 난로 곁을 기웃거리며 자기 도시락이 몇 번째에 놓였는지 살폈다. 아래쪽 도시락은 위로, 위쪽 도시락은 아래로 옮겨야 모두 비슷하게 데워질 수 있었다.

마침내 점심 종이 울리면 뜨거워진 뚜껑들이 하나씩 열렸다. 어떤 도시락에서는 따뜻한 김이 올랐고, 어떤 도시락 바닥에는 노릇한 누룽지가 생겼다. 너무 오래 난로 가까이에 있었던 날에는 밥 아랫부분이 까맣게 눌기도 했다. 뚜껑을 꼭 누르고 도시락을 흔들면 밥과 김치, 달걀반찬이 뒤섞이기도 했다. 같은 난로 위에 있었는데도 도시락마다 점심의 표정이 조금씩 달랐다.

난로 위의 자리가 중요했던 이유

양은 도시락은 보온도시락처럼 열을 가두는 두꺼운 단열층이 없었다. 난로의 뜨거운 윗면과 도시락 바닥이 맞닿으면 열이 얇은 금속을 지나 밥과 반찬으로 빠르게 전해졌다. 덕분에 찬밥을 데울 수 있었지만, 난로에서 내려놓으면 다시 쉽게 식었고 직접 닿은 바닥은 지나치게 뜨거워지기 쉬웠다.

여러 개를 층층이 쌓으면 아래와 위의 온도 차이가 더 벌어졌다. 맨 아래 도시락은 난로 열을 직접 받았지만, 위쪽 도시락은 아래 통들을 거쳐 올라온 열에 의지해야 했다. 난로의 화력과 음식의 양, 도시락끼리 얼마나 빈틈없이 맞닿았는지에 따라서도 데워지는 정도가 달랐다.

그래서 도시락을 데우는 데에도 요령이 필요했다. 교실에 따라 주번이나 먼저 알아챈 학생이 장갑을 끼고 위아래 순서를 바꾸었다. 아래쪽이 너무 뜨거워지지 않았는지, 위쪽까지 열이 올라갔는지를 살피는 일이었다. 한 사람만 자기 도시락을 좋은 자리에 계속 둘 수는 없었으므로 난로 위에도 나름의 차례와 규칙이 생겼다.

‘양은 도시락’은 모두 같은 금속이었을까

우리는 옛 은빛 도시락을 통틀어 ‘양은 도시락’이라고 기억하지만, 실제 제품의 재질이 모두 같았던 것은 아니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 등록된 한 소장품도 별칭은 ‘양은 도시락’이지만 재질은 알루미늄으로 기록돼 있다. 가로 17센티미터, 세로 12.5센티미터, 높이 3센티미터의 납작한 직사각형 도시락이다.

가볍고 책가방에 넣기 쉬운 데다 잘 깨지지 않았기 때문에 학생용으로 쓰기 알맞았다. 그러나 뜨거워진 금속 통을 맨손으로 잡으면 손을 델 수 있었고, 뚜껑이 제대로 닫히지 않으면 반찬 국물이 새기도 했다. 지금은 정겹게 보이지만 당시에는 매일 조심해서 다뤄야 했던 생활도구였다.

난로 한 대가 교실과 점심을 함께 데우던 시절

오늘날과 같은 학교급식이 보편화되기 전에는 많은 학생이 집에서 싼 도시락을 학교에 가져왔다. 그렇다고 옛날에 학교급식이 전혀 없었던 것은 아니다. 해방 이후 원조 급식과 일부 학교의 급식이 있었고, 1981년에는 학교급식법이 마련됐다. 이후 급식이 확대돼 1998년에는 전국 초등학교, 2003년에는 초·중·고등학교 전면 급식이 시행됐다.

급식이 보편화되고 교실 난방도 별도의 설비로 바뀌면서 난로 위 도시락은 자연스럽게 사라졌다. 과거 난로 한 대가 맡았던 일은 이제 교실의 난방 장치와 급식실의 조리·배식 시설이 나누어 맡는다. 도시락을 난로 어느 자리에 올릴지 고민하거나 쉬는 시간마다 순서를 바꿀 필요도 없어졌다.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도시락만이 아니다

난로 위 양은 도시락을 떠올리면 먼저 따뜻한 밥과 노릇한 누룽지가 생각난다. 그러나 그 풍경이 오래 남은 이유는 맛만으로 설명되지 않는다. 서로 다른 집에서 온 도시락들이 한 난로의 열을 나누었고, 내 밥을 따뜻하게 먹으려면 다른 친구의 도시락도 함께 살펴야 했다.

도시락은 사라졌고 점심은 훨씬 편리하고 고르게 제공된다. 대신 “내 도시락 너무 아래 있는 것 아니야?” 하며 난로 곁을 서성이던 작은 소동도 함께 사라졌다. 난로 위에 층층이 쌓였던 것은 도시락만이 아니었다. 추운 교실에서 한정된 온기를 차례대로 나누던 아이들의 겨울 한때도 그 위에 포개져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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