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지식 석유풍로|심지가 끌어올린 부엌의 불꽃

성냥 한 번으로 피어오르던 불

연탄불이 약해졌거나 급하게 국 한 냄비를 끓여야 할 때, 부엌 한쪽의 석유풍로가 제 몫을 했다.

기름통에 등유를 채우고 둥근 심지를 조금 올린 뒤 성냥불을 가까이 대면 붉은 불꽃이 심지를 따라 번졌다. 잠시 후 불꽃이 고르게 자리를 잡으면 양은냄비를 올려 물을 끓이고 찌개와 반찬을 만들었다.

장작을 패거나 연탄에 불이 붙기를 오래 기다릴 필요가 없었던 석유풍로는 당시 부엌일을 한결 빠르게 만들어준 조리 도구였다.

석유를 끌어올린 심지

심지식 석유풍로의 중심에는 천이나 유리섬유로 만든 둥근 심지가 있었다.

심지의 아랫부분은 기름통 속 등유에 잠겨 있고, 윗부분은 불이 붙는 연소부로 이어졌다. 가느다란 섬유 사이로 등유가 스며들어 위로 올라오는 모세관 현상을 이용한 구조였다.

등유는 펌프나 전기의 힘 없이도 심지를 따라 계속 올라왔다. 불이 붙으면 심지 표면의 등유가 열을 받아 기화되고, 공기와 섞인 석유 증기가 타면서 냄비를 데웠다. 심지는 연료를 불꽃 가까이 운반하는 통로였던 셈이다.

바람을 모아 화력을 높인 연소통

심지 위에는 구멍이 촘촘하게 뚫린 원통형 연소통이 놓였다.

풍로 아래쪽으로 들어온 공기는 연소통 안팎을 지나며 불꽃에 산소를 공급했다. 따뜻해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면 아래에서는 새로운 공기가 들어와 자연스럽게 공기의 흐름이 이어졌다.

이 흐름이 고르게 유지되면 불꽃은 심지 둘레에 둥글게 퍼지고 냄비 바닥 전체에 열을 전달했다. 별도의 송풍 장치가 없어도 연소통의 구멍과 모양이 바람길을 만들어준 것이다.

손잡이로 조절했던 불의 세기

풍로 옆의 작은 조절 손잡이를 돌리면 톱니 장치가 심지를 위아래로 움직였다.

심지를 조금 높이면 등유가 기화되는 면적이 넓어져 불꽃이 커졌고, 낮추면 불꽃도 작아졌다. 국을 끓일 때는 심지를 높이고 음식이 끓기 시작하면 낮춰 은근한 불로 익힐 수 있었다.

그러나 심지를 너무 높이면 등유가 충분히 타지 못해 검은 연기와 그을음이 생겼다. 한쪽 심지만 높거나 끝부분이 고르지 않아도 불꽃이 기울어 냄비 바닥이 검게 변했다.

그래서 오래 사용한 심지는 굳거나 탄 부분을 고르게 다듬고, 기름때가 낀 연소통의 구멍도 자주 청소해야 했다.

연탄불 옆의 빠른 조리 도구

석유풍로는 우리나라에 일찍 소개됐지만 등유를 구하기 어려워 보급 속도가 더뎠다. 이후 연료 공급이 나아지면서 1960년대 말부터 1970년대 초 도시 가정에서 연탄과 함께 중요한 취사 도구로 자리 잡았다.

오래 끓여야 하는 밥과 국은 연탄불에 올리고, 금방 만들어야 하는 달걀부침이나 볶음 반찬은 석유풍로에서 조리하는 집이 많았다.

한 부엌에서 두 가지 불을 함께 사용하면서 여러 음식을 동시에 만들 수 있게 됐다. 국립민속박물관 자료에서도 1970년대에는 연탄불과 석유곤로라는 두 열원을 활용하면서 조림과 볶음 반찬을 다양하게 준비할 수 있었다고 설명한다.

석유를 사 오던 날

석유풍로를 쓰려면 집에 등유가 떨어지지 않도록 미리 준비해야 했다.

빈 석유통을 들고 구멍가게나 쌀집에 가서 등유를 받아오고, 깔때기와 고무호스를 이용해 풍로의 연료통에 조심스럽게 부었다. 석유풍로가 널리 사용되면서 등유를 나누어 파는 가게가 늘었고, 기름을 흘리지 않게 해주는 깔때기와 호스도 가정의 필수품이 됐다.

기름을 넣은 뒤에는 심지가 충분히 젖을 때까지 기다렸다가 불을 붙였다. 급한 마음에 마른 심지에 바로 불을 붙이면 심지가 타거나 불꽃이 고르게 퍼지지 않았다.

편리함과 함께 남았던 냄새

석유풍로는 이동하기 쉽고 재가 생기지 않아 편리했다.

필요할 때 바로 불을 붙일 수 있었고 불의 세기도 손잡이로 조절할 수 있었다. 하지만 심지 관리가 필요했고 기름을 넣을 때 흘리면 부엌에 석유 냄새가 오래 남았다. 환기가 부족하거나 불꽃이 고르지 않으면 그을음이 생기기도 했다.

1970년대 중반 국산 석유풍로가 나오며 가격이 낮아져 보급이 확대됐지만, 이후 가스레인지가 널리 퍼지면서 부엌의 자리를 조금씩 내주게 됐다.

한 줄기 심지가 지켜낸 끼니

아침밥을 짓던 연탄불 옆에서 석유풍로는 급한 반찬 한 가지를 더 만들어주었다.

심지는 말없이 기름을 끌어올렸고, 연소통은 작은 불꽃을 냄비 바닥 전체로 퍼뜨렸다. 그 위에서는 된장찌개가 끓고, 생선이 구워지고, 학교에 가져갈 도시락 반찬이 익어갔다.

지금은 손잡이를 돌리는 순간 가스불이 켜지지만, 한때는 기름에 젖은 심지 한 줄이 가족의 따뜻한 끼니를 책임졌다.

심지식 석유풍로는 연탄에서 가스로 넘어가던 시기, 부엌의 시간을 조금 더 빠르고 편리하게 바꿔준 생활의 불꽃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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