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컥, 철컥. 골목 어귀에서 쇠가 맞부딪치는 소리가 두어 번 울리면 아이들의 귀가 먼저 열렸다.
누가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닌데 방에서 놀던 아이들은 마당과 부엌을 뒤지기 시작했다.
찌그러진 양은그릇, 구멍 난 고무신, 못 쓰게 된 쇳조각처럼 어른들이 내놓아도 된다고 한 물건을 찾아 들고 골목으로 뛰어나갔다.
손에 쥔 것은 낡고 보잘것없었지만, 아이들 눈에는 달콤한 엿으로 바뀔 수 있는 작은 보물이었다.
엿장수 앞에 아이들이 둥글게 모이면 잠시 흥정이 벌어졌다.
엿장수는 가져온 물건을 살피고 엿판에서 엿을 떼어 종이에 놓아 주었다.
누구의 엿이 더 큰지 곁눈질하는 아이, 엿이 이에 붙어도 아랑곳하지 않고 오래 씹는 아이, 동생에게 한 조각 떼어 주는 아이가 뒤섞였다.
그날 골목의 간식 시간은 가게의 진열대가 아니라 엿장수의 가위 소리에서 시작됐다.
1. 엿장수의 가위는 왜 그렇게 크게 울렸을까? (이동식 광고의 역사)

엿장수가 들고 다니던 큰 가위는 엿을 덩어리에서 떼어 내거나 알맞게 나누는 도구였다.
하지만 쓰임은 거기서 끝나지 않았다. 두 가위 날을 능숙하게 부딪쳐 일정한 장단을 만들면, 보이지 않는 골목 안쪽까지 엿장수가 왔다는 사실을 알릴 수 있었다.
목청껏 계속 외치지 않아도 되는 이동식 광고이자 도착 알림이었던 셈이다.
숙련된 엿장수는 가위를 단순히 철컥거리지 않았다.
빠르게 치다가 느리게 치고, 장단 사이에 엿 파는 소리를 섞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에도 큰 가위 소리와 노래가 엿장수의 두드러진 특징으로 기록되어 있다.
그래서 아이들에게 그 소리는 금속 소음이 아니라 ‘지금 나가면 엿을 살 수 있다’는 약속처럼 들렸다.
2. 쌀과 엿기름은 어떻게 전통 단맛이 되었을까? (엿 만드는 법)

옛 엿의 단맛은 설탕을 많이 넣어 만든 맛과 달랐다. 쌀이나 찹쌀 같은 곡물을 익힌 뒤 싹 틔운 보리로 만든 엿기름을 넣으면, 곡물 속 전분이 당분으로 바뀌며 단맛이 생긴다.
이를 걸러 오래 끓이면 걸쭉한 물엿이 되고, 더 졸여 굳히면 단단한 강엿이 된다.
굳힌 엿을 여러 차례 늘이고 접으면 공기가 들어가 색이 밝아지고, 부러뜨려 먹기 좋은 엿이 만들어졌다.
지금처럼 포장을 뜯으면 같은 크기의 과자가 나오는 시대가 아니었다.
온도와 습도, 졸이는 정도에 따라 엿의 굳기와 끈기가 달라졌고, 엿장수는 날씨와 엿의 상태를 살피며 떼어 냈다.
가위는 손님을 부르는 악기이면서 엿의 양을 가르는 작업 도구였다.
3. 돈 대신 헌 물건을 내밀었던 까닭 (‘엿장수 마음대로’의 유래)
엿장수에게 반드시 돈만 낸 것은 아니었다. 지역과 시기에 따라 헌 고무신이나 쇠붙이, 깨지거나 찌그러진 생활용품을 가져가 엿과 바꾸기도 했다.
엿장수는 쓸모를 다한 물건을 모아 고물상 등에 넘기고, 아이들은 집 안의 헌 물건을 간식으로 바꿨다.
한쪽에는 필요 없는 것이 다른 쪽에는 다시 값이 되는 작은 순환이었다.
다만 엿과 바꾸어 주는 양은 저울과 가격표로 정확히 정해진 경우만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져온 물건의 상태와 엿장수의 판단에 따라 달라질 수 있었다.
무엇이든 제 마음대로 정한다는 뜻의 ‘엿장수 마음대로’라는 말에는, 엿을 얼마나 떼어 줄지 장수가 정하던 거래 풍경이 반영되어 있다.
아이들에게 이 교환은 돈을 내고 물건을 사는 일보다 훨씬 극적이었다.
어제까지 구석에 굴러다니던 물건이 오늘은 먹을거리로 변했기 때문이다.
물건의 값과 엿의 크기를 재는 어른들의 셈법보다, 내 손으로 간식을 마련했다는 뿌듯함이 더 오래 남았다.
4. 아이들이 엿장수의 손끝을 바라본 이유

가장 긴장되는 순간은 엿장수가 엿을 떼어 줄 때였다. 조금만 더 크게 떨어지기를 바라며 아이들의 시선이 손끝에 모였다.
엿가락이 예상보다 길게 딸려 나오면 얼굴이 밝아졌고, 옆 친구의 몫이 커 보이면 슬며시 자기 것을 다시 펼쳐 보기도 했다.
오늘날처럼 무게와 가격이 포장지에 적혀 있지 않았기에, 엿 한 조각에는 기다림과 흥정과 작은 행운이 함께 붙어 있었다.
그렇다고 이 풍경을 마냥 낭만적으로만 볼 수는 없다.
아이들이 내민 헌 물건에는 물자가 넉넉하지 않았던 살림의 형편이 담겨 있었고, 골목을 돌며 무거운 짐을 모아야 했던 엿장수의 노동도 있었다.
추억 속 단맛은 누군가의 부지런한 발걸음과 고단한 생계 위에서 골목에 도착했다.
5. 엿장수의 가위 소리는 왜 골목에서 멀어졌을까? (사라진 골목 풍경)
가게와 슈퍼마켓에서 포장 과자를 쉽게 살 수 있게 되고, 고물 수거와 재활용 체계가 따로 자리 잡으면서 엿과 헌 물건을 맞바꾸는 방식은 점차 줄어들었다.
자동차가 많아지고 주거 공간이 아파트 중심으로 바뀐 것도 집집마다 소리를 들려주며 다니던 골목 장사와 잘 맞지 않았다.
전통시장이나 축제에서 엿가위 소리를 만날 때는 있어도, 일상의 골목을 정기적으로 찾아오던 엿장수는 이제 보기 어렵다.
그러나 사라진 것은 간식 하나를 파는 방식만이 아니다.
엿장수의 가위는 확성기나 휴대전화 알림이 없던 시절, 소리만으로 사람과 장수를 이어 주던 골목의 신호였다.
동시에 버려질 물건에도 마지막 값이 남아 있음을 보여 주는 교환의 시작이었다.
철컥철컥 소리가 들리자마자 아이들이 문밖으로 달려 나오던 까닭도 여기에 있다.
그 소리 뒤에는 달콤한 엿뿐 아니라, 낡은 물건이 새 쓸모를 얻고 조용하던 골목이 잠시 북적이는 순간이 따라왔기 때문이다.
오늘 우리가 그리워하는 것은 엿의 맛만이 아니라, 하나의 소리를 함께 알아듣고 같은 곳으로 모여들던 동네의 기억인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