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판을 밟으면 소리가 났던 교실 풍금은 어떤 원리로 울렸을까?

음악 시간이 시작되면 선생님은 교실 앞의 나무 풍금 뚜껑부터 열었다. 두 발이 번갈아 발판을 누르고, 건반 위에 손이 올라가면 곧바로 노래가 시작될 것 같았다. 하지만 오래 쉬었던 풍금은 첫 건반에서 맑은 음 대신 힘 빠진 숨소리를 내기도 했다. 발판을 몇 번 더 밟아 안쪽에 바람이 차고 나서야 익숙한 반주가 교실에 퍼졌다.

아이들 눈에는 피아노와 비슷해 보였지만 풍금 안에는 줄도, 줄을 때리는 망치도 없었다. 풍금의 소리를 만든 것은 전기가 아니라 선생님의 두 발이 밀어 넣고 끌어당긴 바람이었다.

풍금은 작은 피아노가 아니었다

풍금은 우리나라에서 리드 오르간 또는 하모니움을 가리키던 이름이다. 피아노는 건반을 누르면 망치가 줄을 쳐서 소리를 내지만, 풍금은 공기가 얇은 금속 떨림판인 리드를 지나가며 소리를 만든다. 겉모습과 건반 배열은 닮았어도 소리가 생기는 방식은 전혀 달랐다.

국립중앙박물관 e뮤지엄에 소개된 풍금은 발판을 밟아 내부 공기통인 벨로우즈에 바람을 공급하고, 건반을 누르면 금속 리드가 울리는 리드 오르간이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바람을 불어내는 방식과 빨아들이는 방식이 있으며, 우리나라의 풍금은 공기를 빨아들이는 방식이 많았다고 설명한다.

건반 하나를 누르면 그 음에 해당하는 공기 통로가 열린다. 페달로 만든 공기가 통로를 지나가면 금속 리드가 빠르게 떨리고, 그 떨림이 나무 몸통 안에서 울려 음이 된다. 여러 건반을 함께 누르면 여러 리드가 동시에 울려 화음이 만들어졌다.

두 발은 반주보다 먼저 움직였다

풍금은 손으로 건반만 잘 누른다고 연주할 수 있는 악기가 아니었다. 연주자는 양발로 페달을 일정하게 밟아 벨로우즈의 공기 압력을 유지해야 했다. 발을 멈추면 남아 있던 바람이 빠지면서 소리가 약해지고 끝내 끊어졌다.

너무 성급하게 페달을 밟으면 소리가 거칠어질 수 있었고, 바람이 부족하면 음이 힘없이 떨렸다. 노래의 빠르기와 세기에 맞춰 발의 속도를 조절하면서 손으로는 건반을 연주해야 했다. 풍금 옆에 달린 스톱 장치는 사용할 리드의 조합이나 음색을 바꾸는 데 쓰였다.

오래된 풍금에서 바람 새는 소리가 나거나 음이 고르지 않았던 것도 이 구조와 관련이 있다. 벨로우즈의 가죽이나 천이 낡아 틈이 생기면 충분한 압력을 만들기 어려웠고, 리드에 먼지가 끼거나 변형되면 특정 음이 늦게 나거나 떨릴 수 있었다. 풍금을 고칠 때는 건반만이 아니라 바람길과 리드 상태까지 함께 살펴야 했다.

풍금이 학교와 교회에 많았던 이유

풍금은 전기가 없어도 연주할 수 있고, 한 사람이 노래 반주를 맡기에 알맞았다. e뮤지엄 소장품 설명에 따르면 이런 풍금은 주로 1960~1980년대 한국의 학교 음악실과 교회에서 널리 사용됐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도 풍금이 음악교육과 찬송가 반주를 통해 서양식 음악과 조율 체계를 보급하는 데 영향을 주었다고 설명한다.

피아노보다 옮기기 쉽고 전기 장치가 필요 없다는 점도 학교에서 쓰기 좋은 조건이었다. 교사는 풍금 앞에 앉아 반주했고, 학생들은 교사의 발과 손이 만든 한 가지 속도에 맞춰 함께 노래했다. 풍금은 악기이면서 여러 사람의 목소리를 하나로 모으는 기준점이었다.

전자건반이 대신할 수 없었던 한 가지

피아노와 전자키보드가 널리 보급되면서 학교 풍금은 차츰 자리를 내주었다. 전자건반은 페달로 계속 바람을 만들 필요가 없고 음량과 음색을 쉽게 바꿀 수 있다. 낡은 벨로우즈와 리드를 수리하고 조율해야 하는 부담도 줄었다.

하지만 전자건반의 스위치를 켜는 일과 풍금의 첫 음을 준비하는 일은 달랐다. 풍금은 노래가 시작되기 전부터 누군가 계속 발을 움직여 바람을 모아야 했다. 교실을 채운 소리는 건반에서 갑자기 생긴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공기를 한 번도 끊기지 않게 이어 준 발끝에서 먼저 시작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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