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솥 때워요. 냄비 때워요.”
골목에 굵은 목소리가 들리면 집집마다 금이 간 솥과 구멍 난 냄비가 마당으로 나왔다. 땜장이는 양지바른 담장 아래에 화로를 놓고 작은 풀무를 연결했다. 발이나 손으로 풀무를 움직일 때마다 숯불이 붉어졌고, 화로에 꽂아 둔 땜인두 끝도 점점 벌겋게 달아올랐다.
아이들은 그 모습을 구경하려고 둘러앉았다. 불에 달군 인두가 구멍 난 솥에 닿으면 은빛 땜납이 물방울처럼 녹아내렸다. 잠시 뒤 망치 소리가 골목에 퍼지고, 버려질 뻔했던 솥은 다시 물을 담을 수 있는 그릇이 됐다.
솥 하나를 쉽게 버릴 수 없었던 시절
1960년대 무렵까지만 해도 솥과 주전자, 냄비에 구멍이 났다고 곧바로 버리지는 않았다. 무쇠솥과 놋그릇은 값이 비쌌고, 집안에서 오랫동안 사용해야 하는 중요한 살림이었다.
땜장이는 일정한 가게 없이 마을을 돌아다니기도 했다. 화로와 풀무, 땜인두, 집게, 가위, 줄, 망치, 작은 모루, 금속판과 땜납을 짊어지고 다니다가 수리할 그릇이 모이면 그 자리에서 작업을 시작했다.
겉으로는 구멍을 막는 단순한 일처럼 보이지만, 무쇠와 놋쇠는 두께와 단단함, 열이 퍼지는 속도가 달랐다. 어떤 곳을 얼마나 달구고 어떤 금속을 덧댈지 판단하려면 재료의 성질을 알아야 했다.
솥 자체를 녹이지 않고 붙이는 원리
땜질은 무쇠솥이나 놋그릇 자체를 녹여 붙이는 작업이 아니다. 그릇보다 낮은 온도에서 녹는 땜납을 틈에 흘려 넣고 굳혀 연결하는 기술이다.
과거에 사용한 땜납은 주로 납과 주석을 섞은 합금이었다. 철이나 구리 계열의 그릇보다 낮은 온도에서 쉽게 녹기 때문에, 그릇의 형태를 그대로 둔 채 구멍과 금이 간 부분만 메울 수 있었다.
다만 땜납은 아무 금속에나 저절로 붙지 않는다. 수리할 곳에 녹과 기름때, 그을음이 남아 있으면 녹은 땜납이 표면에서 동그랗게 뭉쳐 흘러내린다. 땜장이는 칼과 줄로 손상 부위를 긁어 금속의 깨끗한 면을 드러낸 뒤 작업했다.
달군 인두를 대면 열이 그릇과 땜납으로 전달된다. 그릇 표면이 적당히 데워졌을 때 녹은 땜납이 좁은 틈으로 퍼지고, 인두를 떼어내면 식으면서 단단하게 굳는다. 금속을 녹이는 불의 세기보다 열을 멈춰야 할 순간을 아는 것이 더 중요했다.
작은 구멍과 크게 상한 바닥의 수리법
작은 구멍은 주변을 깨끗하게 긁은 다음 땜납을 올리고, 벌겋게 달군 인두로 눌러 녹였다. 땜납이 구멍을 충분히 덮으면 식기를 기다린 뒤 망치로 여러 번 두드려 표면을 평평하게 만들었다.
솥 바닥이 넓게 닳거나 여러 곳에 구멍이 생긴 경우에는 땜납만으로 해결하기 어려웠다. 약해진 부분을 잘라내고 비슷한 두께의 금속판을 손상 부위보다 넓게 오렸다. 이어 솥 바닥의 둥근 곡면에 맞도록 집게와 망치로 금속판을 조금씩 휘었다.
덧댄 판이 들뜨지 않도록 자리를 잡은 뒤 가장자리를 따라 땜납을 녹여 틈을 막았다. 판의 곡면이 솥과 맞지 않으면 물이 새거나 불 위에 올렸을 때 다시 벌어질 수 있어, 망치질로 모양을 맞추는 과정이 오래 걸렸다.
무쇠솥과 놋그릇은 다르게 다뤘다
무쇠는 두껍고 단단하지만 충격에 약해 깨지기 쉬운 금속이다. 금이 간 솥을 무리하게 두드리면 금이 더 길게 번질 수 있었다. 따라서 솥 전체를 세게 두드리기보다 덧댈 금속판과 땜질한 가장자리를 조금씩 다듬어야 했다.
놋그릇은 무쇠솥보다 얇고 열이 빠르게 퍼졌다. 인두를 한곳에 오래 대면 그릇이 휘거나 표면색이 달라질 수 있어, 필요한 만큼만 빠르게 열을 주어야 했다. 얇은 그릇은 망치 자국이 그대로 남기 때문에 힘의 세기도 조절해야 했다.
불이 약하면 땜납이 완전히 녹지 않아 표면에 뭉쳤다. 반대로 인두가 지나치게 뜨거우면 수리 부위가 빠르게 산화되고 얇은 그릇이 변형될 수 있었다. 땜장이는 풀무질하는 횟수와 인두 끝의 색을 보며 불의 세기를 판단했다.
된장을 바르고 물을 부어 확인한 마무리
땜질이 끝났다고 곧바로 일을 마치는 것은 아니었다. 표면을 망치로 평평하게 다듬은 뒤 땜질한 자리에 된장을 바르고 문질렀다. 당시에는 된장이 금속 표면의 산화를 줄이는 데 도움이 된다고 여겼다.
마지막에는 솥에 물을 부어 수리한 부분에서 물방울이 맺히는지 살폈다. 아주 작은 틈이라도 발견되면 다시 물을 비우고 그 자리를 닦아 땜납을 보충했다. 물이 새지 않아야 비로소 주인에게 솥을 돌려줄 수 있었다.
하지만 이 작업은 화상과 화재 위험이 컸고, 땜납 성분과 연기에 반복해서 노출되는 문제도 있었다. 특히 과거의 납·주석 땜납을 음식용 그릇에 사용하는 방식은 현재의 식품안전 기준에 맞지 않으므로 오늘날 그대로 따라 해서는 안 된다.
새것이 흔해지며 사라진 땜장이
알루미늄과 스테인리스 그릇이 대량으로 생산되고 가격이 낮아지면서, 사람들은 낡은 그릇을 수리하기보다 새로 사기 시작했다. 전기밥솥과 가스레인지가 보급되면서 아궁이에 걸던 큰 무쇠솥도 점차 줄었다.
현대에는 주철 용접과 브레이징 같은 전문 수리 기술이 있지만, 새 제품 가격보다 수리비가 더 많이 드는 경우가 많다. 골목을 돌며 여러 집의 솥과 냄비를 한자리에서 고치던 땜장이의 일도 함께 사라졌다.
땜장이는 낡은 솥을 새것처럼 감추지 않았다. 수리가 끝난 자리에는 은빛 땜납과 덧댄 금속판, 잘게 이어진 망치 자국이 그대로 남았다.
그 흔적은 흠이 아니라 한 번 더 써도 된다는 약속이었다. 다시 아궁이에 걸린 솥에서 밥물이 끓어오르면, 불 앞에 쭈그리고 앉아 금속의 온도를 살피던 땜장이의 하루도 그 집의 저녁밥 속에서 조용히 제 몫을 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