큰 무쇠솥의 물이 끓기 시작하면 부엌 안은 금세 뿌연 김으로 가득 찼다. 솥 위에는 굵고 긴 나무로 만든 국수틀이 걸렸고, 한쪽에서는 반죽을 통 안에 넣었다. 장정들이 긴 손잡이에 몸을 싣자 나무가 낮게 삐걱거렸다. 잠시 뒤 틀 밑의 작은 구멍마다 가느다란 면발이 밀려 나와 끓는 물속으로 곧장 떨어졌다.
지금은 버튼 하나로 일정한 굵기의 국수를 뽑지만, 예전에는 반죽의 상태를 살피고 사람의 힘으로 눌러야 한 솥의 국수가 만들어졌다. 이때 사용한 도구가 분틀이라고도 불린 전통 국수틀이다.
끈기 없는 메밀을 국수로 만들던 방법
우리나라에서는 밀가루가 귀했던 시절 메밀과 녹말, 감자 전분 등 여러 가루로 국수를 만들었다. 특히 메밀은 척박한 땅에서도 비교적 잘 자랐지만, 밀가루 반죽처럼 끈기가 강하지 않았다. 메밀가루만으로 반죽을 넓게 밀어 칼로 썰면 면발이 쉽게 갈라지거나 짧게 끊어졌다.
사람들은 이 약점을 힘으로 해결했다. 반죽을 작은 구멍으로 강하게 밀어내면 서로 흩어지려던 반죽이 가늘고 긴 가락으로 성형된다. 구멍을 통과한 면이 바로 끓는 물에 들어가 익기 시작하므로, 약한 면발도 모양을 비교적 안정적으로 유지할 수 있었다.
조선시대 조리서에는 구멍을 뚫은 바가지로 반죽을 눌러 국수를 만드는 방법과 국수틀을 이용하는 방법이 기록되어 있다. 국수틀은 단순한 부엌 도구처럼 보이지만 재료의 성질을 이해하고 만든 생활 기술이었다.
나무와 쇠로 만든 분틀의 구조
전통적인 분틀은 크게 몸체, 반죽을 넣는 원통, 반죽을 누르는 공이, 긴 손잡이와 구멍판으로 이루어졌다.
굵고 단단한 나무로 만든 몸체는 솥 위에서 틀을 지탱했다. 몸체 가운데에는 반죽을 담는 원통형 공간을 파고, 바닥에는 작은 구멍이 여러 개 뚫린 금속판을 붙였다. 위쪽의 공이는 원통 안으로 들어가 반죽을 아래로 밀어내는 역할을 했다.
사람들이 누르는 긴 손잡이는 지렛대였다. 손잡이가 길수록 사람이 누른 힘은 공이에 더 큰 압력으로 전달된다. 이 압력을 받은 반죽이 금속판의 구멍을 통과하면서 구멍과 비슷한 굵기의 면발로 바뀌었다. 오늘날 제면기의 압출 원리와 크게 다르지 않지만, 당시의 동력은 전기나 유압이 아니라 사람의 팔과 몸무게였다.
국수 한 솥을 뽑는 작업 순서
먼저 곡물가루를 고운 체에 걸러 거친 껍질과 덩어리를 없앴다. 메밀처럼 찰기가 부족한 가루는 따뜻한 물로 익반죽하거나 녹말 또는 다른 가루를 섞어 면발이 이어질 수 있도록 했다.
반죽이 준비되면 원통에 들어갈 크기로 뭉쳐 분틀에 넣었다. 한두 사람이 긴 손잡이를 천천히 누르는 동안 다른 사람은 솥 옆에서 면발이 떨어지는 위치와 익는 상태를 살폈다. 한곳에 면이 몰리면 서로 붙기 전에 긴 젓가락이나 막대기로 조심스럽게 흩어 주었다.
면이 익으면 빠르게 건져 찬물에 헹구고 손으로 둥글게 말아 사리를 지었다. 분틀을 누르는 일만 힘들었던 것이 아니다. 뜨거운 김 속에서 국수를 건지고 헹구며 다음 반죽까지 준비해야 했으므로 여러 사람의 호흡이 중요했다.
국수 장인의 기술은 반죽에서 드러났다
분틀의 구조는 단순했지만 누구나 같은 면을 뽑을 수 있었던 것은 아니다. 가장 어려운 일은 반죽의 되기를 맞추는 것이었다.
반죽이 너무 되면 손잡이를 눌러도 잘 내려가지 않고 면발 표면이 거칠어졌다. 반대로 물이 지나치게 많으면 구멍을 빠져나온 면이 서로 들러붙거나 끓는 물에서 쉽게 풀어졌다. 가루의 종류와 보관 상태, 날씨와 습도에 따라서도 필요한 물의 양이 달라졌다.
숙련자는 반죽을 손바닥으로 눌렀을 때 되돌아오는 정도와 손가락에 묻는 상태를 보고 물이나 가루를 조금씩 보충했다. 면발이 끊어지면 무조건 힘을 더 주기보다 반죽 상태와 막힌 구멍을 먼저 살폈다. 국수가 너무 빠르게 쏟아지면 누르는 속도를 늦추고, 솥물이 약해지면 잠시 기다렸다가 다시 눌렀다.
이러한 판단은 정해진 숫자보다 눈과 손의 감각에 가까웠다.
뜨거운 솥과 무거운 나무틀의 위험
옛 국수 작업은 낭만적으로만 볼 수 없었다. 큰 분틀은 무겁고 자리를 많이 차지했으며 한 사람이 다루기 어려웠다. 끓는 솥 바로 위에서 작업했기 때문에 뜨거운 물과 증기에 화상을 입을 위험도 컸다.
사람들이 동시에 손잡이를 누르다 힘의 방향이 어긋나면 틀이 흔들릴 수 있었다. 반죽이 막혔다고 갑자기 더 강하게 누르면 나무 연결부나 금속판에 무리가 갈 수도 있었다. 숙련자는 분틀이 솥에 단단히 걸렸는지, 손잡이의 연결 부분이 갈라지지 않았는지 먼저 확인한 뒤 작업을 시작했다.
크고 무거운 국수틀은 집집마다 갖추기 어려워 마을 사람들이 함께 사용했을 가능성도 크다. 국수 한 그릇에는 반죽한 사람과 분틀을 누른 사람, 삶고 헹군 사람의 노동이 함께 들어 있었다.
분틀이 제면기에 자리를 내준 이유
회전식 국수틀과 유압식·전동식 제면기가 보급되면서 국수 만드는 일은 훨씬 빨라졌다. 기계는 일정한 압력을 계속 유지할 수 있었고 면의 굵기도 고르게 맞출 수 있었다. 공장에서 만든 건면을 손쉽게 구할 수 있게 되면서 크고 무거운 분틀을 솥 위에 거는 일도 줄어들었다.
그러나 오늘날의 압출식 제면기에도 분틀의 기본 원리는 남아 있다. 반죽을 압력으로 밀어 작은 구멍을 통과시키고, 원하는 굵기의 면발을 얻는 방식이다. 달라진 것은 원리보다 힘을 내는 방법이다. 예전에는 여러 사람의 팔과 어깨가 움직였고, 지금은 모터와 유압 장치가 그 자리를 대신한다.
나무가 삐걱거리던 순간에 담긴 것
분틀의 긴 손잡이가 내려갈 때마다 장인의 팔에는 힘줄이 돋았고, 솥에서는 하얀 김이 끊임없이 피어올랐다. 장인은 그 김 너머로 면발의 굵기와 떨어지는 속도를 살피며 손짓으로 힘을 조절했다.
한 그릇의 국수가 완성되면 분틀에는 젖은 반죽 자국이 남고, 국수를 눌렀던 사람들의 이마에는 땀이 맺혔다. 우리가 지금 가볍게 집어 드는 국수 한 젓가락은 한때 단단한 나무와 뜨거운 솥, 여러 사람의 힘이 함께 만들어 낸 음식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