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화도 인터넷도 없던 시절에는 먼 곳의 소식을 듣기 위해 며칠씩 편지를 기다려야 했다. 그러나 전신기가 등장하면서 사람들은 목소리 대신 짧고 긴 전기 신호를 이용해 소식을 전달하기 시작했다. 전신원은 손가락으로 전신키를 누르고 떼며 전류의 흐름을 조절했고, 멀리 떨어진 전신국에서는 그 신호를 소리로 듣고 다시 글자로 옮겼다.
오늘날에는 버튼 하나만 누르면 사진과 영상까지 전송할 수 있지만, 전신기는 단순한 점과 선만으로 사람과 사람을 연결했던 최초의 전기 통신 기술 가운데 하나였다.
전신기는 어떻게 글자를 전달했을까?
전신기는 사람의 목소리나 글자의 모양을 그대로 보내는 기계가 아니다. 전선을 통해 전기가 흐르는 순간과 끊어지는 순간을 조합해 정보를 전달한다.
전신원이 책상 위의 전신키를 누르면 회로가 연결되면서 전류가 흐르고, 손을 떼면 회로가 다시 끊어진다. 전신키를 짧게 누르면 ‘점’, 조금 길게 누르면 ‘선’에 해당하는 신호가 만들어졌다. 이렇게 만들어진 점과 선의 조합이 바로 모스부호다.
예를 들어 조난 신호로 알려진 SOS는 점 세 개, 선 세 개, 다시 점 세 개인 ‘··· ――― ···’로 표현된다. 중요한 것은 단순히 빠르게 누르는 것이 아니라 점과 선의 길이, 글자 사이의 간격, 단어 사이의 쉼을 일정하게 지키는 일이었다.
스미스소니언의 전신키 자료에서도 전신원이 전신키를 짧게 두드리면 점이 되고, 조금 더 길게 누르면 선이 되어 문자와 숫자를 표현한다고 설명한다.
전기 신호를 소리로 바꾼 전신 음향기
전선을 따라 도착한 전류는 수신기의 전자석을 작동시켰다. 전류가 흐르면 전자석이 금속 레버를 끌어당기고, 전류가 끊어지면 용수철의 힘으로 레버가 원래 위치로 돌아갔다. 이때 레버가 금속 받침에 닿으며 ‘딸깍’ 또는 ‘딱’ 하는 소리가 났다.
짧은 소리는 점, 긴 간격을 가진 소리는 선으로 구분됐다. 수신 측 전신원은 종이에 표시된 문양을 보는 것이 아니라 연속해서 들려오는 소리의 박자를 귀로 구별해 문장으로 받아 적기도 했다. 숙련된 전신원에게 전신기의 딸깍거림은 기계음이 아니라 또 하나의 언어였다.
스미스소니언의 전신키와 음향기 자료에 따르면 전기 신호가 전자석을 움직이고, 레버가 내는 소리를 전신원이 해석해 문자와 숫자로 바꾸는 방식으로 작동했다.
초기의 전신기 가운데는 움직이는 종이띠에 점과 선을 기록하는 장치도 있었다. 하지만 경험이 쌓인 전신원들은 종이띠를 확인하는 것보다 소리를 듣고 바로 받아쓰는 편이 더 빠르다는 사실을 알게 됐다.
한 통의 전보가 배달되기까지
전보를 보내려는 사람은 전신국을 찾아가 전보 용지에 내용을 적었다. 접수된 문장은 전신원에게 전달됐고, 전신원은 글자를 모스부호로 바꾸어 전신키를 두드렸다.
수신 전신국의 전신원은 도착한 신호를 다시 문장으로 옮겼다. 주소와 수신인 이름을 확인한 후에는 배달원이 전보를 들고 직접 집이나 가게를 찾아갔다. 전송 과정은 빨랐지만 마지막 전달만큼은 사람의 발과 자전거에 의지해야 했다.
전보는 글자 수와 전송 거리를 고려해야 했기 때문에 문장을 짧게 줄여 쓰는 경우가 많았다. 인사말과 꾸밈말을 생략한 채 “금일 도착”, “합격 축하”, “급히 귀가”처럼 필요한 내용만 적었다. 짧은 문장일수록 전신원도 더 빠르고 정확하게 전송할 수 있었다.
손끝과 귀로 완성했던 전신원의 기술
전신원의 실력은 전신키를 얼마나 빠르게 누르느냐만으로 결정되지 않았다. 점과 선의 길이가 일정해야 했고, 글자와 단어 사이의 간격도 정확해야 했다. 손가락에 힘이 너무 많이 들어가면 신호가 길어지고, 급하게 누르면 서로 다른 글자가 하나로 이어질 수 있었다.
수신할 때는 더욱 높은 집중력이 필요했다. 끊임없이 이어지는 딸깍거림 속에서 글자를 구별하고, 한 손으로 내용을 받아 적으며, 잘못 들은 부분까지 확인해야 했다. 전선 상태가 좋지 않거나 잡음이 생기면 상대 전신국에 재송신을 요청하기도 했다.
장거리 전송에서는 신호가 약해질 수 있었기 때문에 중간의 계전기나 중계소가 전기 신호를 다시 또렷하게 만들어 다음 구간으로 보냈다. 기술이 아무리 발전해도 마지막에는 전신원의 손끝과 귀가 문장의 정확성을 책임졌다.
우리나라에 들어온 전신과 한글 전신부호
우리나라에서는 1885년 한성과 인천 사이에 전신이 개통되고 한성전보총국이 설치되면서 근대적인 전기 통신이 시작됐다. 이후 한성에서 의주를 잇는 서로전선이 운영되며 관청의 보고와 긴급한 소식을 이전보다 훨씬 빠르게 전달할 수 있게 됐다.
영문 알파벳과 구조가 다른 한글을 전신으로 보내기 위해서는 별도의 부호 체계도 필요했다. 김학우는 한글을 전송할 수 있는 국문 전신부호를 마련해 우리말 소식을 전선을 통해 전달할 수 있도록 했다. 자세한 내용은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의 전신 자료와 서로전선 자료에서 확인할 수 있다.
전보 한 장을 기다리던 마음
전화와 팩스, 인터넷과 휴대전화가 차례로 보급되면서 전신기와 전보는 점차 우리 생활에서 사라졌다. 이제 낡은 전신키는 박물관 진열장 안에서나 만날 수 있지만, 전류를 끊고 연결해 정보를 보내는 원리는 오늘날의 디지털 통신에도 이어져 있다.
대문 밖에서 “전보 왔습니다”라는 목소리가 들리면 집 안의 공기가 먼저 멈췄을 것이다. 얇은 종이 한 장에는 합격이나 출산처럼 반가운 소식이 적히기도 했고, 서둘러 고향으로 돌아오라는 다급한 문장이 담기기도 했다. 봉투를 뜯기 전까지 누구도 그 몇 글자가 하루를 어떻게 바꿀지 알 수 없었다.
전신원은 그 사정을 알지 못한 채 정해진 박자에 맞춰 전신키를 눌렀을 것이다. 그러나 차가운 전선을 지나온 점과 선의 끝에는 늘 누군가의 기다림이 있었다. 수많은 말을 짧은 부호로 줄여 보내야 했던 시대였지만, 그 몇 글자를 기다리는 마음만큼은 어떤 긴 편지보다 깊고 무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