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을걷이가 끝난 농가의 마당에는 탈곡한 벼가 수북이 쌓였다. 그러나 볏짚에서 낟알을 떨어냈다고 해서 곧바로 곳간에 넣을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알곡 사이에는 빈 껍질과 쭉정이, 잘게 부서진 볏짚과 먼지가 뒤섞여 있었다.
농부가 나무 풍구의 발판을 일정하게 밟자 둥근 통 안의 날개가 빠르게 돌기 시작했다. 다른 사람이 위쪽의 투입구에 곡식을 천천히 부으면 가벼운 쭉정이는 바람을 타고 옆으로 날아가고, 속이 꽉 찬 낟알은 아래쪽으로 떨어졌다. 눈에 보이지 않는 바람이 곡식의 무게를 가려내던 순간이었다.
풍구가 필요했던 이유
풍구가 없던 시절에는 키나 넉가래로 곡식을 공중에 띄워 자연 바람에 쭉정이를 날려 보냈다. 커다란 드림부채를 흔들거나, 부뚜라고 부른 긴 자리를 발로 밟고 양쪽을 벌렸다 모으며 바람을 만들기도 했다.
이 방법은 날씨의 영향을 많이 받았다. 바람이 약한 날에는 곡식과 쭉정이가 제대로 나뉘지 않았고, 바람이 지나치게 강하면 알곡까지 멀리 흩어졌다. 부채나 부뚜를 온종일 흔들면 팔과 어깨의 힘이 빠졌으며, 곡식을 붓는 사람과 바람을 일으키는 사람의 호흡도 맞아야 했다.
풍구는 사람이 만든 바람을 일정한 방향과 세기로 보내 이러한 수고를 줄여 준 농기구였다.
조선 후기의 발판식 풍구
모든 풍구를 발로 밟아 사용한 것은 아니다. 조선 후기 기록에는 발판을 밟아 내부의 부채 날개를 움직이는 풍구가 등장하지만, 당시 우리나라 농가에 널리 보급된 형태는 아니었던 것으로 전해진다.
실학자 박지원은 농서 《과농소초》에서 경상도 안의현감으로 있을 때 중국식 풍구를 본떠 만들어 시험했다고 기록했다. 어린아이도 발판을 가볍게 밟아 많은 곡식을 고를 수 있을 만큼 능률적이었다는 설명이 남아 있다.
이후 농가에 본격적으로 보급된 개량 풍구는 주로 옆면의 손잡이를 돌리는 방식이었다. 따라서 40번 글의 주인공은 풍구의 여러 형태 가운데 발판의 힘으로 바람개비를 돌렸던 초기 발판식 풍구라고 보는 것이 정확하다.
나무 상자 안에 들어 있던 구조
풍구는 위쪽의 곡식 투입구와 투입량 조절판, 둥근 송풍통, 회전축과 여러 장의 날개, 발판 또는 손잡이, 알곡 배출구와 검불 배출구로 이루어졌다.
몸체는 주로 나무판으로 짜고 내부의 축이나 연결 부위에는 쇠붙이를 사용했다. 둥근 송풍통 안에는 얇고 넓은 나무 날개를 여러 장 달았다. 발판을 밟으면 연결대와 회전축을 통해 힘이 날개로 전달되고, 날개가 빠르게 회전하면서 통 안의 공기를 한쪽 출구로 밀어냈다.
위쪽 투입구 아래에는 얇은 조절판이 있었다. 이 판을 조금 열면 곡식이 가느다란 줄처럼 일정하게 떨어지고, 많이 열면 한꺼번에 쏟아졌다. 곡식이 너무 두껍게 떨어지면 바람이 낟알 사이를 통과하지 못했기 때문에 투입량 조절이 매우 중요했다.
알곡과 쭉정이가 갈라지는 원리
풍구의 핵심은 곡식의 무게와 공기 저항의 차이를 이용하는 데 있었다. 속이 꽉 찬 낟알은 같은 크기의 쭉정이보다 무겁고 밀도가 높다. 바람을 맞아도 멀리 밀리지 않고 중력에 따라 아래쪽으로 떨어진다.
반대로 속이 빈 쭉정이와 겨, 잘게 부서진 검불은 가볍고 바람을 받는 면적이 넓다. 회전 날개가 만든 바람을 만나면 옆쪽의 검불 배출구로 밀려 나갔다. 무게가 중간 정도인 싸라기나 덜 여문 곡식은 알곡보다 조금 더 먼 곳으로 떨어졌다.
풍구 안에는 체중계도 복잡한 장치도 없었다. 낟알이 떨어지는 길목에 일정한 바람을 보내는 것만으로 무거운 것과 가벼운 것을 자연스럽게 나누었다.
농부가 풍구를 사용했던 순서
먼저 탈곡한 곡식을 햇볕에 충분히 말렸다. 곡식이 축축하면 겨와 검불이 낟알에 달라붙어 바람을 맞아도 잘 떨어지지 않았다. 마른 곡식은 큰 볏짚과 돌멩이를 손으로 대강 골라낸 뒤 풍구 위의 투입구에 담았다.
한 사람은 풍구 옆에 서서 발판을 일정한 박자로 밟았다. 회전 날개가 충분한 속도에 이르러 바람이 고르게 나오면 다른 사람이 조절판을 조금씩 열어 곡식을 흘려보냈다.
가벼운 쭉정이와 먼지는 옆으로 날아가고, 알곡은 아래쪽 배출구를 통해 바구니나 멍석 위에 모였다. 한 번의 작업으로 깨끗하게 골라지지 않으면 중간에 모인 곡식을 다시 풍구에 넣어 한 차례 더 가려냈다.
발의 리듬과 눈으로 맞춘 바람의 세기
발판을 빠르게 밟는다고 무조건 잘 골라지는 것은 아니었다. 바람이 너무 약하면 쭉정이가 알곡과 함께 아래로 떨어졌다. 반대로 바람이 지나치게 강하면 잘 여문 낟알까지 검불 쪽으로 밀려나 곡식을 잃을 수 있었다.
벼와 보리, 밀, 콩은 낟알의 크기와 무게가 달랐으므로 같은 속도로 풍구를 돌릴 수 없었다. 숙련된 농부는 배출구에서 떨어지는 곡식을 손으로 받아 보고 바람의 세기를 조절했다. 쭉정이가 섞이면 발판을 조금 빠르게 밟고, 알곡이 옆으로 튀면 속도를 낮췄다.
곡식이 쏟아지는 양도 함께 살펴야 했다. 투입량이 많으면 바람길이 막혔고, 너무 적으면 일은 깨끗하게 되지만 시간이 오래 걸렸다. 농부는 발판의 박자와 조절판의 틈을 맞추며 곡식이 얇고 고르게 떨어지도록 했다.
고장과 실수를 바로잡던 손기술
풍구 안의 나무 날개가 한쪽으로 휘거나 축이 닳으면 회전할 때 몸체가 심하게 떨렸다. 연결 부위가 헐거워지면 발판을 밟아도 힘이 제대로 전달되지 않았다. 농부들은 닳은 축에 기름을 치고, 느슨해진 부분에는 나무 쐐기를 끼워 흔들림을 줄였다.
날개 사이에 볏짚이 끼면 반드시 풍구를 멈춘 뒤 내부를 청소했다. 회전하는 축과 날개 가까이에 손이나 옷자락이 들어가면 크게 다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먼지가 많이 날리는 작업이라 바람이 사람 쪽으로 불지 않도록 풍구의 방향을 잡는 것도 중요했다.
풍구가 농기계에 자리를 내준 이유
손으로 돌리는 개량 풍구가 보급되면서 발판식 풍구는 점차 보기 어려워졌다. 이후 풍구에 전동기를 연결하면서 사람이 발판을 밟거나 손잡이를 돌릴 필요도 줄어들었다.
오늘날에는 콤바인과 곡물 정선기가 탈곡과 선별 작업을 빠르게 처리한다. 기계 안에는 송풍기와 체, 진동판 등이 들어 있어 많은 양의 곡물을 일정한 기준으로 골라낸다.
그러나 현대 곡물 선별기의 기본에도 풍구의 생각이 이어진다. 바람에 쉽게 밀리는 가벼운 물질과 쉽게 밀리지 않는 무거운 곡물을 공기의 흐름으로 나누는 원리다.
발판이 멈춘 뒤 마당에 남은 것
해가 기울 무렵까지 발판을 밟고 나면 농부의 다리는 무거워지고 고무신 속에는 땀이 찼다. 한 사람은 위에서 곡식을 붓고, 다른 사람은 발판의 박자를 놓치지 않았다. 옆에서는 가족이 바구니를 옮기며 쭉정이 속에 알곡이 섞이지 않았는지 다시 살폈다.
풍구가 돌아가는 동안 마당에는 나무 날개가 공기를 가르는 소리와 낟알이 바구니에 떨어지는 소리가 쉼 없이 이어졌다. 흙먼지와 검불이 옷에 달라붙었지만, 아래쪽 바구니에는 겨울을 견디게 해 줄 깨끗한 곡식이 차곡차곡 쌓였다.
마지막 곡식까지 가려내고 발판이 멈추면 소란스럽던 마당도 잠시 고요해졌다. 가벼운 쭉정이는 마당 한쪽에 소복이 모였고, 풍구 아래 바구니에는 속이 꽉 찬 알곡이 노랗게 차올랐다.
농부는 굽혔던 허리를 천천히 펴고 옷소매로 이마의 땀을 닦았다. 가족들은 잘 여문 낟알을 한 줌씩 손바닥에 올려 보며 비로소 마음을 놓았다. 그 곡식으로 밥을 짓고 겨울을 날 수 있다는 생각에, 고단했던 하루도 조금은 든든해졌다. 풍구의 발판을 함께 밟고 바구니를 나르던 수고 끝에는 한 해 농사를 무사히 마쳤다는 가족들의 안도와 작은 웃음이 남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