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겨울 새벽, 꽁꽁 언 강 위에서 ‘서걱서걱’ 톱날이 얼음을 파고들었다. 장정들이 입김을 내뿜으며 얼음 위에 반듯한 선을 긋고 톱을 밀고 당기면, 두꺼운 얼음판이 커다란 네모 덩어리로 떨어져 나왔다.
물 밖으로 끌어낸 얼음은 갈고리와 동아줄로 붙잡아 목도에 걸었다. 여러 사람이 발을 맞춰 석빙고까지 옮기는 동안 얼음 표면에서는 녹은 물이 흘렀고, 빙고 입구에는 얼음을 감쌀 볏짚과 왕겨가 수북이 쌓여 있었다.
오늘날에는 냉동고가 몇 시간이면 얼음을 만들지만, 그 시절 한여름의 얼음 한 덩이는 겨울부터 준비해야 얻을 수 있는 귀한 물건이었다.
한여름을 위해 겨울에 시작한 장빙
겨울철 강에서 얼음을 잘라 운반하고 빙고에 저장하는 모든 과정을 ‘장빙’이라고 했다. 조선시대에는 국가 제사에 사용할 얼음을 보관하는 동빙고, 왕실과 관리들에게 나눠줄 얼음을 보관하는 서빙고, 궁궐에서 사용할 내빙고가 운영됐다.
현재 남아 있는 석빙고는 대부분 조선 후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그전에는 나무로 만든 목빙고나 풀과 짚으로 덮은 초개빙고도 많이 사용됐지만, 나무와 짚은 쉽게 썩고 불에도 약했기 때문에 흔적이 거의 남지 않았다.
얼음을 뜨는 일은 날이 충분히 추워 강물이 두껍게 언 뒤에야 시작할 수 있었다. 작업자들은 얼음의 두께와 갈라진 곳을 살핀 다음 톱으로 일정한 간격의 선을 냈다. 잘라낸 얼음은 긴 갈고리로 끌어당기고 동아줄로 묶어 목도나 수레에 실었다. 무거운 얼음이 미끄러지거나 발밑 얼음판이 깨지면 큰 사고로 이어질 수 있는 위험한 일이었다.
전기 없이 냉기를 지킨 석빙고의 원리
석빙고는 단순히 돌이 차가워서 얼음을 보관할 수 있었던 창고가 아니다. 땅과 공기, 물의 움직임을 이용해 외부의 열이 들어오는 속도를 늦춘 건축물이었다.
먼저 석빙고는 땅을 파고 반지하로 만들었다. 땅속은 지상보다 하루 동안의 온도 변화가 작기 때문에 한낮의 더위가 내부로 빠르게 전달되지 않는다. 천장은 무지개처럼 휘어진 홍예 구조로 쌓고, 그 위를 두꺼운 흙과 석회로 덮어 햇볕과 빗물을 막았다.
입구는 작게 만들어 더운 공기의 출입을 줄였다. 천장에는 환기 구멍을 두어 내부에서 데워진 공기가 위로 올라가 빠져나가도록 했다. 바닥은 한쪽으로 기울이고 끝에 배수구를 설치했다. 얼음이 녹은 물이 바닥에 고이면 습도가 높아지고 얼음과 물이 계속 맞닿아 더 빨리 녹기 때문에, 물을 곧바로 빼내는 것이 중요했다.
얼음과 벽 사이에는 볏짚과 갈대, 왕겨를 채웠다. 마른 볏짚의 속과 볏짚 사이에는 작은 공기층이 많다. 움직이지 않는 공기는 열을 천천히 전달하므로, 볏짚은 오늘날 단열재와 비슷한 역할을 했다.
톱질보다 어려웠던 얼음 상태를 읽는 일
얼음을 반듯하게 자르는 일에도 경험이 필요했다. 금이 간 자리를 잘못 건드리면 애써 자른 얼음판이 여러 조각으로 갈라졌다. 절단선이 비뚤어지면 얼음을 촘촘하게 쌓기 어려워 빈틈으로 공기가 드나들었다.
숙련된 작업자는 얼음의 갈라진 무늬와 톱날에 전해지는 저항을 살피며 방향을 잡았다. 여러 사람이 톱질과 운반을 할 때는 힘을 주는 순간과 얼음을 들어 올리는 박자도 맞아야 했다. 석빙고 안에서는 얼음 사이의 빈틈을 볏짚과 왕겨로 메우고, 벽과 천장에도 단열재를 충분히 채웠다.
장빙은 낭만적인 겨울 풍경만은 아니었다. 매서운 강바람 속에서 젖은 손으로 톱과 동아줄을 다뤄야 했고, 크고 미끄러운 얼음의 무게를 온몸으로 견뎌야 했다. 조선시대에는 많은 백성과 군사가 이 일에 동원됐기 때문에 장빙역을 매우 힘든 부역으로 여겼다.
석빙고의 지혜를 이어받은 얼음장수
조선 후기에는 얼음 수요가 늘고 국가 빙고의 운영 방식이 바뀌면서 민간에서도 얼음을 사고팔기 시작했다. 훗날 도시 골목에서 볼 수 있었던 얼음장수는 조선시대 관영 빙고의 장빙군과 시대와 역할이 다르지만, 얼음을 아껴 다루는 방법은 이어졌다.
얼음가게에서는 커다란 얼음 덩어리를 손님의 주문량에 맞춰 긴 톱으로 잘랐다. 잘라낸 얼음은 새끼줄로 묶거나 볏짚과 거적으로 감싸 손수레, 자전거, 소달구지 등에 실어 날랐다. 볏짚은 이동하는 동안 햇볕과 더운 공기가 얼음에 직접 닿는 것을 막아주었다.
냉장고와 제빙공장이 널리 보급되면서 석빙고와 얼음장수의 자리는 빠르게 줄어들었다. 현대의 냉동기는 전기와 냉매를 이용해 열을 밖으로 밀어내며 필요한 만큼 얼음을 계속 만들어 낸다. 반면 옛사람들은 겨울의 추위를 창고에 넣어 두고, 조금씩 녹아 없어지는 시간을 최대한 늦춰 사용했다.
그들이 여름을 견딘 방법은 추위를 새로 만드는 일이 아니라, 겨울이 건네준 추위를 허투루 쓰지 않는 일이었다.
톱날이 지나간 푸른 선, 어깨를 짓누르던 목도의 무게, 얼음 틈마다 눌러 넣던 마른 볏짚 한 줌. 석빙고의 문이 닫힌 뒤에도 그 수고는 계절을 건너 한여름의 밥상과 병든 이의 이마에 닿았다. 차가운 얼음을 오래 지켜낸 것은 두꺼운 돌벽만이 아니라, 녹아 없어질 것을 알면서도 마지막 한 조각까지 아껴 다루던 사람들의 손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