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깨를 볶고 찧고 눌러 기름을 짜던 옛 방앗간 기술

명절이 다가오거나 햇참깨를 거두는 계절이면 방앗간 앞에는 깨가 담긴 자루가 하나둘 놓이기 시작했다.

자루에는 주인의 이름이 적혀 있었다. 같은 참깨라도 어느 밭에서 어떻게 길렀는지에 따라 알의 크기와 수분, 기름이 나오는 양이 달랐기 때문이다.

방앗간 안에서는 넓은 솥에 참깨가 볶아지고 있었다. 주걱이 솥바닥을 긁는 소리와 기계가 돌아가는 소리가 섞였고, 잠시 후 고소한 냄새가 골목까지 번졌다.

하지만 참기름은 참깨를 볶아 기계에 넣는 것만으로 만들어지지 않았다. 씻고, 볶고, 찧고, 찌고, 누르는 여러 과정을 거쳐야 비로소 한 줄기의 기름이 흘러나왔다.

참깨는 왜 먼저 씻었을까?

밭에서 거둔 참깨에는 흙과 먼지, 작은 돌이나 마른 껍질이 섞여 있을 수 있었다.

기름을 짜기 전에는 참깨를 물에 씻어 불순물을 골라내고 충분히 말려야 했다. 수분이 많이 남으면 참깨가 고르게 볶아지지 않고 기름의 맛과 보관 상태에도 영향을 줄 수 있었다.

깨끗이 손질한 참깨는 방앗간의 볶음솥으로 옮겨졌다.

참기름 맛은 볶는 과정에서 결정됐다

참깨를 볶는 일은 단순히 익히는 과정이 아니었다.

열을 받은 참깨에서는 수분이 빠지고 조직이 부드러워졌다. 동시에 우리가 참기름에서 느끼는 고소한 향과 짙은 색이 만들어졌다.

그러나 많이 볶는다고 항상 좋은 것은 아니었다.

덜 볶으면 향이 약하고 기름이 충분히 나오지 않을 수 있었다. 반대로 지나치게 볶으면 참깨가 타면서 쓴맛과 탄 냄새가 섞였다.

방앗간 주인은 온도계보다 참깨의 색과 냄새, 주걱으로 저을 때 느껴지는 상태를 살폈다. 같은 시간 동안 볶더라도 참깨의 수분과 양에 따라 결과가 달라졌기 때문이다.

불을 언제 줄이고 솥에서 언제 꺼낼지는 오랜 경험으로 판단해야 했다.

볶은 참깨를 왜 다시 찧었을까?

잘 볶아진 참깨는 절구나 분쇄기로 잘게 찧었다.

참깨를 부수면 단단한 껍질과 내부 조직이 깨지면서 그 안에 있던 기름이 빠져나오기 쉬운 상태가 된다.

옛날에는 볶은 깨를 절구에 넣고 찧은 다음 체에 내려 입자를 고르게 만들었다. 제대로 부서지지 않은 참깨가 많으면 아무리 강한 압력을 가해도 기름이 충분히 나오지 않았다.

찧은 참깨는 가루라기보다 수분과 기름기가 섞인 묵직한 반죽에 가까웠다.

찧은 참깨를 다시 찐 이유

잘게 만든 참깨는 베로 만든 기름주머니에 담아 솥에서 김을 쬐었다.

이 과정은 참깨 반죽을 따뜻하고 부드럽게 만들어 압력을 가했을 때 기름이 더 원활하게 빠져나오도록 하기 위한 것이었다.

김을 쬔 참깨는 식기 전에 기름틀로 옮겨야 했다. 온도가 내려가면 기름의 흐름이 둔해져 짜는 일이 어려워질 수 있기 때문이다.

베주머니에 담긴 참깨 덩어리를 ‘기름떡’ 또는 ‘떡밥’이라고 불렀다.

무거운 돌과 지렛대로 기름을 눌러 짰다

재래식 기름틀은 대부분 굵은 나무로 만들어졌다.

기름떡을 홈이 파인 떡판 위에 올리고 그 위를 두꺼운 나무판으로 덮었다. 여기에 긴 누름나무와 무거운 돌을 이용해 압력을 가했다.

지렛대의 원리를 이용하면 사람이 누르는 힘보다 훨씬 강한 압력을 기름떡에 전달할 수 있었다.

압력이 서서히 높아지면 참깨 반죽에서 갈색 기름이 배어 나왔다. 기름은 떡판의 홈을 따라 모인 뒤 작은 대롱을 통해 아래에 놓인 그릇으로 떨어졌다.

처음에는 가느다란 실처럼 흐르다가 압력이 더해지면 조금씩 양이 늘어났다. 빨리 끝내려고 한꺼번에 힘을 가하는 것보다 기름이 빠져나올 시간을 주면서 천천히 누르는 것이 중요했다.

기름을 짜고 남은 깨묵도 버리지 않았다

기름을 모두 짜고 나면 주머니 안에는 단단하게 눌린 참깨 찌꺼기가 남았다. 이를 깨묵 또는 참깨박이라고 불렀다.

깨묵에는 기름과 영양분이 일부 남아 있어 가축의 먹이나 밭의 거름으로 사용하기도 했다.

방앗간에서는 참깨를 가져온 자루부터 마지막에 남은 깨묵까지 함부로 버리는 것이 거의 없었다. 한 해 동안 농사지어 얻은 수확물을 가능한 한 끝까지 이용했다.

기계가 바뀌어도 기름을 짜는 원리는 같았다

시간이 지나면서 절구와 나무 기름틀은 전동 분쇄기와 금속 압착기로 바뀌었다.

볶음기와 유압식 기름짜는 기계가 들어오면서 적은 인원으로 더 많은 참기름을 만들 수 있게 됐다. 작업시간도 줄고 압력을 일정하게 유지하기도 쉬워졌다.

그러나 기본 원리는 크게 달라지지 않았다.

참깨를 깨끗하게 손질하고, 알맞게 볶고, 잘게 부순 뒤 압력을 가해 기름을 분리하는 순서는 지금의 방앗간에도 남아 있다.

달라진 것은 사람의 힘을 나무와 돌이 대신하던 방식이 모터와 유압으로 바뀌었다는 점이다.

옛 방앗간은 왜 줄어들었을까?

도시가 커지고 직접 농사지은 참깨를 가져와 기름을 짜는 가정이 줄면서 동네 방앗간도 하나둘 문을 닫았다.

마트와 인터넷에서 병에 담긴 참기름을 쉽게 구할 수 있게 된 것도 큰 변화였다. 기다렸다가 기름을 짜기보다 필요한 만큼 바로 구입하는 생활이 익숙해졌다.

그렇다고 방앗간이 완전히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전통시장과 농촌 지역에는 여전히 손님이 가져온 참깨와 들깨로 기름을 짜주는 곳이 남아 있다.

사라지고 있는 것은 참기름 자체가 아니라, 한 집에서 거둔 깨가 다른 집의 깨와 섞이지 않도록 이름을 확인하고 그 집의 수확량에 맞춰 불과 압력을 조절하던 방식이다.

한 병에 담긴 한 해의 수확

옛날 방앗간에서 참기름 한 병이 나오기까지는 생각보다 많은 판단이 필요했다.

깨를 얼마나 말릴지, 불을 언제 줄일지, 어느 정도로 찧을지, 언제 기름틀에 넣고 얼마만큼 눌러야 할지를 작업자가 계속 살펴야 했다.

참기름이 흐르기 시작하면 깨를 가져온 사람은 빈 병을 들고 그 앞에서 기다렸다. 조금 전까지 자루에 담겨 있던 참깨가 투명한 갈색 액체로 바뀌는 장면을 직접 지켜볼 수 있었다.

집으로 가져간 참기름은 여러 음식에 몇 방울씩 더해졌다. 나물 한 접시와 국 한 그릇에 들어간 향은 사실 밭에서 참깨를 심고 거두던 시간부터 시작된 것이었다.

그래서 옛 방앗간에서 나온 한 병의 참기름은 단순한 양념이 아니었다.

햇빛과 비, 농사일과 기다림을 압력으로 눌러 담은, 액체가 된 한 해의 수확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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