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면이 흔들리는 비디오테이프를 바로잡던 VHS 트래킹 기술

비디오테이프를 넣고 재생 버튼을 눌렀는데 화면 아래쪽에 흰색 줄이 나타나거나 영상이 위아래로 흔들리던 때가 있었다.

그럴 때 사람들은 고장이 났다고 단정하지 않았다. 비디오 플레이어 앞에 앉아 ‘트래킹’이라고 적힌 작은 다이얼을 돌리거나 리모컨의 +, – 버튼을 천천히 눌렀다.

화면을 가로지르던 지직거리는 띠가 아래로 내려가다가 사라지는 순간, 흐릿했던 얼굴이 다시 제 모습을 찾았다.

오늘은 버튼 하나만 누르면 영상이 또렷하게 재생되지만, 그 시절에는 화면 한 장을 제대로 보기 위해 기계와 사람이 서로 박자를 맞춰야 했다.

VHS 테이프에는 영상이 어떻게 기록됐을까?

VHS는 12.7mm 폭의 자기테이프에 영상과 소리를 기록하는 방식이다.

테이프가 천천히 이동하는 동안 비디오 플레이어 안에서는 영상 헤드가 붙어 있는 둥근 드럼이 빠르게 회전했다. 회전하는 헤드는 테이프 위에 영상을 직선이 아닌 비스듬한 줄무늬 형태로 기록했다. 이를 ‘헬리컬 스캔’ 방식이라고 한다.

좁은 테이프에 많은 영상 정보를 담기 위한 영리한 방법이었지만, 재생할 때는 헤드가 녹화 당시 만들어진 가느다란 자국을 정확히 따라가야 했다.

VHS 방식의 첫 가정용 비디오 플레이어인 HR-3300은 1976년 일본 빅터, 현재의 JVC에서 출시됐다. 이 기술은 이후 가정용 영상기기의 세계 표준으로 자리 잡았다.
JVC켄우드 VHS 개발 연혁

화면에 흰 줄이 생긴 이유

비디오테이프에는 영상 자국 외에도 재생 속도와 위치를 맞추기 위한 ‘컨트롤 트랙’이 따로 기록돼 있었다.

플레이어는 여기에 담긴 일정한 간격의 신호를 읽으며 테이프의 이동과 회전 헤드의 타이밍을 맞췄다.

하지만 다른 기계에서 녹화한 테이프를 재생하거나 테이프가 오래돼 조금 늘어나면 재생 헤드가 영상 자국의 정중앙을 따라가지 못하는 일이 생겼다.

헤드가 두 영상 자국 사이를 걸치면 필요한 신호 대신 불완전한 정보가 읽혔다. 그 결과 화면에 눈발 같은 잡음이 생기고, 가로줄이 움직이거나 색이 빠지고 소리가 흔들렸다.

특히 여러 사람이 빌려 본 대여점 비디오나 장시간 녹화 모드로 기록한 테이프에서 이런 현상이 자주 나타났다.

트래킹은 무엇을 조절했을까?

트래킹 버튼은 화면의 밝기나 선명도를 조절하는 기능이 아니었다.

재생 중 테이프를 일정한 속도로 끌어주는 ‘캡스턴’의 서보 타이밍을 아주 조금 앞뒤로 옮겨, 회전 헤드가 영상 자국의 중심을 지나도록 맞추는 기능이었다.

쉽게 말하면 테이프에 이미 그려진 가느다란 길 위로 재생 헤드가 정확히 지나가도록 출발 위치를 조금씩 조정하는 일이었다.

트래킹 다이얼을 돌리면 화면의 잡음 띠가 위아래로 움직였다. 사용자는 화면을 지켜보면서 잡음이 가장 적어지는 지점에서 손을 멈췄다.

기종에 따라서는 채널 버튼이 트래킹 조절 버튼 역할을 하기도 했다. 후기 제품에는 자동 트래킹 기능이 들어가 테이프를 삽입하면 기계가 스스로 최적의 위치를 찾았다. 그래도 상태가 좋지 않은 테이프는 사람이 직접 조절해야 했다.

JVC 비디오 플레이어 설명서에도 자동 트래킹으로 잡음이 사라지지 않으면 채널 버튼을 이용해 화면과 소리가 가장 좋아질 때까지 수동으로 조절하도록 안내돼 있다.
JVC 비디오 플레이어 수동 트래킹 설명

트래킹으로 모든 화면을 고칠 수 있었을까?

트래킹은 손상된 영상을 새것처럼 복원하는 기술은 아니었다.

테이프가 구겨지거나 곰팡이가 생긴 경우, 자기 신호가 지워진 경우, 비디오 헤드에 먼지가 붙은 경우에는 트래킹을 아무리 조절해도 화면이 제대로 나오지 않았다.

오래된 테이프의 영상이 좌우로 떨리거나 시간축이 불규칙하게 흔들리는 문제는 TBC라는 별도의 보정 기술이 필요하기도 했다.

즉 트래킹은 남아 있는 영상 신호를 헤드가 제대로 읽도록 길을 맞춰주는 기능이었다. 사라진 신호까지 되살리는 마법은 아니었다.

트래킹 버튼이 사라진 이유

DVD와 디지털 영상이 보급되면서 자기테이프의 가느다란 기록 자국을 재생 헤드가 따라가야 할 필요도 사라졌다.

디지털 영상은 저장된 정보를 숫자로 읽고, 일부 정보가 불완전하면 오류 보정과 버퍼 기능을 이용한다. 사용자가 화면을 보며 재생 위치를 손으로 맞출 이유가 없어진 것이다.

그와 함께 비디오 플레이어 앞에 쪼그리고 앉아 다이얼을 한 칸씩 돌리던 모습도 생활에서 사라졌다.

화면을 보는 사람도 재생의 일부였던 시절

VHS 화면은 언제나 완벽하지 않았다.

테이프마다 상태가 달랐고 같은 테이프도 어느 기계에서 재생하느냐에 따라 화면이 달라졌다. 영상을 보는 사람은 단순한 관객이 아니라 기계의 상태를 살피고 가장 좋은 지점을 찾아주는 조정자이기도 했다.

트래킹 다이얼을 돌리던 손은 화질만 고친 것이 아니었다. 제대로 보이지 않는 장면을 포기하지 않고, 그 안에 남아 있는 사람의 표정과 목소리를 끝까지 찾아내려는 손이었다.

지금은 영상이 멈추면 곧바로 다음 영상을 선택한다. 그러나 비디오테이프의 화면이 흔들리던 시절에는 떠나는 화면을 붙잡기 위해 잠시 기다렸다.

어쩌면 트래킹은 기계를 조정하는 기술이면서, 흐려진 장면을 조금 더 오래 바라보게 했던 생활의 습관이었는지도 모른다.


참고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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