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온병을 흔들어 보고 알아낸 작은 파손
손님이 가져온 보온병을 귀 가까이에 대고 천천히 기울이면 안쪽에서 가느다란 유리 조각이 구르는 소리가 났다. 겉으로는 찌그러진 곳 하나 없이 멀쩡해 보여도 그 소리만 들으면 수리공은 무엇이 잘못됐는지 짐작할 수 있었다.
그는 작업대에 두꺼운 천을 깔고 보온병의 마개와 컵 뚜껑을 차례로 내려놓았다. 이어 바닥 덮개를 풀어 깨진 유리 내피를 조심스럽게 꺼냈다. 반짝이는 은빛 유리병이 새것으로 갈리는 동안, 오래된 보온병은 다시 따뜻한 물을 품을 준비를 시작했다.
예전의 보온병은 지금처럼 쉽게 버리는 생활용품이 아니었다. 나들이에 가져갈 물부터 환자의 약물, 일터의 따뜻한 차까지 오랫동안 온도를 지켜 주는 귀한 살림이었다. 속이 깨졌다고 겉통까지 버리기보다 유리 내피만 갈아 끼워 다시 사용하는 경우가 많았다.
보온병 안에 숨어 있던 또 하나의 병
오래된 보온병은 크게 외통, 유리 내피, 마개, 컵 뚜껑으로 이루어졌다. 겉의 금속이나 플라스틱 통은 충격으로부터 내부를 보호했고, 실제로 물을 담고 온도를 유지하는 역할은 안쪽의 유리 내피가 맡았다.
유리 내피는 한 겹짜리 병이 아니었다. 두 겹의 유리벽 사이에 있는 공기를 빼내 진공 상태로 만들고, 유리 표면에는 열을 반사하는 은빛 막을 입혔다. 진공층은 공기를 통한 열의 이동을 줄이고, 반사층은 복사열이 빠져나가는 것을 막았다. 입구의 코르크나 합성수지 마개도 따뜻한 공기가 밖으로 빠져나가지 않게 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이 소장한 오래된 보온병에서도 금속 또는 플라스틱 외통 안에 유리 내피와 별도의 마개가 들어간 구조를 확인할 수 있다. 스미스소니언 국립미국사박물관
깨진 유리를 붙이지 않고 통째로 바꾼 이유
유리 내피에 금이 가면 두 유리벽 사이의 진공이 사라졌다. 진공이 깨진 내피는 물은 담을 수 있어도 열이 빠르게 빠져나가 보온병의 역할을 하지 못했다.
접착제로 금이 간 부분을 붙인다 해도 공장에서 만든 진공 상태와 은빛 반사층까지 복원할 수는 없었다. 따라서 보온병 수리는 깨진 곳을 때우는 작업이 아니라, 손상된 내피를 규격이 맞는 새 내피로 통째로 교체하는 작업이었다.
수리공은 먼저 보온병을 흔들어 깨진 조각이 남아 있는지 확인했다. 따뜻한 물을 담았을 때 외통이 금세 뜨거워진다면 진공이 손상되었을 가능성도 살폈다. 마개 주변에서만 열이 빠져나가는지, 유리 내피 자체가 깨졌는지 구분해야 불필요한 교체를 피할 수 있었다.
깨진 내피를 꺼내는 것이 첫 번째 고비였다
수리를 시작하기 전에는 보온병 안의 물기를 완전히 없앴다. 젖은 유리 조각은 손에서 미끄러지기 쉽고, 작은 조각은 빛에 잘 보이지 않아 위험했기 때문이다.
제품에 따라 바닥 덮개를 돌려 풀거나 목 부분의 고정 테를 분리했다. 그 안에는 유리 내피가 흔들리지 않도록 받쳐 주는 고무 고리와 펠트, 코르크 또는 종이 완충재가 들어 있었다. 수리공은 이 부품들이 놓인 순서를 기억해 두었다가 다시 같은 위치에 넣었다.
깨진 내피는 맨손으로 잡아당기지 않았다. 보온병 몸통을 두꺼운 천으로 감싸고, 유리 목 부분에 무리한 힘이 가지 않도록 천천히 기울여 꺼냈다. 안에서 부서진 유리는 천이나 종이로 싼 채 별도의 통에 옮겼다. 겉으로 보이는 큰 조각보다 바닥과 완충재 사이에 숨어 있는 작은 파편이 더 위험했다.
용량이 같아도 맞지 않았던 유리 내피
새 내피를 고를 때는 보온병의 용량만 확인해서는 안 됐다. 같은 양의 물을 담는 제품이라도 유리병의 몸통 지름과 전체 길이, 어깨의 곡선, 목의 굵기가 서로 달랐다.
내피가 조금만 굵어도 외통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고, 지나치게 가늘면 사용 중에 흔들렸다. 길이가 짧으면 마개가 제대로 닿지 않았으며, 길면 바닥 덮개를 닫을 때 유리병이 눌려 다시 깨질 수 있었다.
수리공은 자나 눈대중으로 기존 내피와 새 내피의 길이를 비교하고, 목 부분을 보온병 입구에 대보았다. 오래 일한 사람은 유리병을 외통 안에 살짝 넣어 보는 것만으로도 어느 부분이 닿고 어디에 완충재가 더 필요한지 알아차렸다.
유리를 잡아 준 것은 고무와 얇은 천이었다
규격이 맞는 새 내피를 찾으면 외통 안에 남은 유리 조각과 먼지를 먼저 털어냈다. 목 둘레에는 고무 고리를 끼워 유리와 금속이 직접 닿지 않게 했고, 바닥에는 둥근 완충재를 놓았다.
새 내피를 넣을 때는 몸통보다 목 부분을 조심해야 했다. 유리 목은 가늘고 충격이 한곳에 모이기 쉬워 조금만 비뚤게 눌러도 금이 갈 수 있었다. 수리공은 한 손으로 내피의 몸통을 천에 감싸 받치고, 다른 손으로 목이 외통의 입구 한가운데에 놓이도록 천천히 맞췄다.
내피를 넣은 뒤에는 보온병을 가볍게 움직여 흔들림을 확인했다. 달그락거리는 소리가 나면 바닥이나 옆면의 완충재를 보충했다. 그렇다고 완충재를 지나치게 두껍게 넣으면 바닥 덮개를 닫을 때 유리가 압박을 받았다.
가장 중요한 것은 유리를 단단하게 누르는 것이 아니라, 어느 쪽에도 직접 부딪치지 않게 중심을 잡아 주는 일이었다.
마지막 한 바퀴에서 갈리던 수리의 결과
바닥 덮개는 한꺼번에 힘주어 조이지 않았다. 수리공은 내피가 기울지 않았는지 살피며 조금씩 돌렸다. 덮개가 닫히기 직전 손끝에 지나치게 강한 저항이 느껴지면 곧바로 풀어 완충재의 두께와 위치를 다시 확인했다.
‘조금만 더 조이면 단단해지겠지’라는 생각으로 힘을 주는 순간 새 내피가 깨질 수 있었다. 그래서 마지막 한 바퀴는 수리공의 경험이 가장 필요한 순간이었다. 느슨하지 않으면서도 유리를 누르지 않는 지점을 손의 감각으로 찾아야 했다.
내피를 고정한 뒤에는 마개도 살폈다. 굳어서 줄어든 코르크 마개나 찢어진 고무 고리는 열이 입구로 새는 원인이 되었다. 외통의 찌그러진 부분이 안쪽으로 밀려 들어와 유리 내피에 닿지는 않는지도 확인했다.
물을 담아 확인한 보온병의 두 번째 수명
수리가 끝난 보온병에는 처음부터 끓는 물을 붓지 않았다. 먼저 상온의 물을 조금 넣어 새는 곳이 없는지 살피고, 그다음 따뜻한 물을 담아 시험했다. 갑작스러운 온도 변화로 새 유리 내피에 충격이 가는 것을 피하기 위해서였다.
마개를 닫고 잠시 기다린 뒤 외통을 손바닥으로 감싸 보았다. 외통 전체가 빠르게 따뜻해지면 내피의 진공 상태나 조립 상태에 문제가 있을 수 있었다. 물이 새지 않고 겉통에 열이 거의 느껴지지 않으면 컵 뚜껑까지 닫아 수리를 마쳤다.
보온병의 구조는 전도와 대류를 줄이는 진공층, 복사열을 되돌리는 반사층, 입구의 열 손실을 막는 마개가 함께 작동하는 방식이다. 콜로라도대학교 물리학 실험실
스테인리스 보온병과 함께 사라진 수리점
스테인리스 진공 보온병이 널리 보급되면서 유리 내피가 깨지는 일은 크게 줄었다. 현대의 보온병은 안쪽과 바깥쪽 금속 벽을 하나의 구조로 제작하기 때문에 예전처럼 내피만 간단히 꺼내 교체하기 어렵다.
제품 가격이 낮아지고 보온병의 모양과 규격이 다양해지면서, 교체용 유리 내피를 여러 크기로 갖춰 놓던 수리점도 자취를 감췄다. 깨진 물건을 고쳐 쓰기보다 새 제품으로 바꾸는 일이 더 빠르고 쉬워진 것이다.
수리를 마친 보온병을 작업대 위에 세우자 안에서 들리던 유리 조각의 소리는 더 이상 나지 않았다. 수리공은 따뜻한 물을 조금 따라 버리고 마른 천으로 꽃무늬 외통을 닦았다. 바닥 덮개를 조이던 손끝의 힘과 유리 목을 한가운데 맞추던 눈썰미 덕분에, 버려질 뻔했던 보온병은 다시 누군가의 하루를 식지 않게 지켜 줄 수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