겨울이 깊어지면 집집마다 부엌 아궁이에서는 붉은 불빛이 새어 나왔습니다. 어머니는 연탄집게로 다 타버린 연탄을 꺼내고, 남아 있는 불씨 위에 새 연탄을 조심스럽게 올려놓았습니다.
연탄의 구멍이 서로 어긋나면 불이 제대로 붙지 않았고, 공기가 너무 많이 들어가면 연탄이 빠르게 타버렸습니다. 반대로 공기가 부족하면 불완전 연소로 위험한 연탄가스가 생길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궁이와 굴뚝은 단순히 불을 피우고 연기를 내보내는 시설이 아니었습니다. 공기를 끌어들이고 열을 방바닥 아래로 보내며, 연기와 가스를 집 밖으로 배출하는 하나의 난방 장치였습니다.
아궁이와 굴뚝 사이에는 무엇이 있었을까?
전통 온돌은 크게 아궁이·부넘기·고래·개자리·연도·굴뚝으로 이루어졌습니다.
아궁이에서 불을 피우면 뜨거워진 연기와 열기가 부넘기를 넘어 방바닥 아래의 통로인 고래로 들어갑니다. 고래 위에는 넓고 평평한 구들장이 놓이고, 그 위를 흙으로 발라 방바닥을 만들었습니다.
열기는 구들장 아래를 천천히 지나며 돌을 데웠습니다. 한번 달궈진 구들장은 불이 약해진 뒤에도 한동안 열을 머금고 있다가 방 안으로 서서히 전달했습니다. 그래서 온돌은 불이 꺼진 후에도 따뜻함이 오래 남는 축열식 난방의 성격을 지녔습니다.
고래를 지난 연기는 끝부분의 개자리에 잠시 머물렀다가 연도와 굴뚝을 통해 밖으로 빠져나갔습니다. 전통 온돌이 취사와 난방을 한꺼번에 해결할 수 있었던 이유도 이러한 구조에 있었습니다.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굴뚝은 어떻게 불씨를 살렸을까?
불이 계속 타려면 산소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아궁이 안의 공기가 뜨거워지면 가벼워진 공기와 연기가 굴뚝을 따라 위로 올라갑니다. 그 빈자리를 채우기 위해 바깥의 차가운 공기가 다시 아궁이 안으로 들어옵니다.
이렇게 생기는 공기의 흐름을 흔히 굴뚝의 상승기류 또는 굴뚝효과라고 합니다.
공기의 흐름이 적당하면 연탄에 산소가 공급되어 불씨가 꺼지지 않고, 연기와 연소가스도 굴뚝 쪽으로 이동합니다. 굴뚝은 연기를 빼내는 배출구인 동시에 아궁이 안으로 새로운 공기를 끌어들이는 역할을 했던 것입니다.
그러나 굴뚝이 막히거나 고래에 재와 그을음이 쌓이면 공기의 흐름이 약해졌습니다. 바람이 굴뚝 안으로 거꾸로 불어 들어오거나 구들장과 바닥의 틈이 벌어져도 연기와 가스가 방 안으로 스며들 수 있었습니다.
따라서 굴뚝이 있다고 해서 연탄가스가 완전히 차단되는 것은 아니었습니다. 온돌의 각 부분이 막힘없이 연결되고 구들장과 바닥의 틈이 잘 메워져 있어야 안전하게 작동할 수 있었습니다.
장작 아궁이에서 연탄 아궁이로
우리나라의 전통 온돌은 본래 나무와 짚 같은 땔감을 사용하는 구조였습니다. 이후 도시 인구가 늘고 땔감이 부족해지면서 값이 비교적 저렴하고 운반과 보관이 편리한 연탄이 생활 연료로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습니다.
기존 아궁이에 연탄 화덕을 설치하거나, 연탄을 넣을 수 있도록 구조를 고쳐 사용한 집도 많았습니다. 연탄 한 장으로 오랫동안 열을 얻을 수 있었기 때문에 서민 가정에서는 취사와 난방을 해결해주는 고마운 연료였습니다.
하지만 연탄이 산소가 부족한 상태에서 제대로 타지 않으면 일산화탄소가 발생할 수 있었습니다. 일산화탄소는 색과 냄새가 없어 사람이 알아차리기 어렵습니다. 그래서 당시 사람들이 말하던 ‘연탄가스 냄새’만으로 위험 여부를 판단할 수 없었습니다.
특히 방바닥이 갈라졌거나 연통과 굴뚝이 막힌 집에서는 일산화탄소가 방 안으로 들어올 위험이 컸습니다. 국가기록원 자료에 따르면 1960년대 연탄 사용이 늘면서 중독사고도 급증했고, 정부는 강습회와 영화를 통한 예방 운동까지 벌였습니다. 국가기록원
연탄을 다루는 데도 숙련된 손기술이 필요했다
연탄을 갈아 넣는 일은 보기보다 까다로웠습니다.
먼저 다 타지 않은 연탄의 불씨가 살아 있는지 살폈습니다. 새 연탄을 올릴 때는 아래 연탄과 위 연탄의 구멍을 정확하게 맞춰야 했습니다. 구멍이 어긋나면 공기가 제대로 통하지 않아 불이 꺼지거나 불완전 연소가 일어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불이 약할 때는 아궁이문이나 공기구멍을 열어 바람이 들어가게 했고, 불길이 너무 강하면 공기의 양을 줄였습니다. 연탄을 너무 일찍 갈면 남은 열을 버리게 되고, 너무 늦게 갈면 불씨가 완전히 꺼졌습니다.
불씨가 약해지기 전에 연탄을 갈아야 했기에 식구들은 밤늦게까지 불 상태를 확인하거나 새벽 일찍 일어나 아궁이를 살폈습니다. 연탄집게로 뜨거운 연탄을 기울지 않게 들어 올리는 일, 구멍을 반듯하게 맞추는 일, 아궁이문의 틈을 조절하는 일에는 오랫동안 몸으로 익힌 감각이 필요했습니다.
집 안의 불을 관리한 사람들은 별도의 직업인이기보다 대부분 그 집의 어머니와 할머니였습니다. 가족이 잠든 밤에도 불씨가 꺼지지 않는지, 가스가 새어 들어오지는 않는지 살피는 일이 겨울철의 중요한 집안일이었습니다.
온돌을 새로 놓거나 고장 난 구들을 고치는 일은 구들장·구들공·온돌장 등으로 불리던 숙련된 기술자들이 담당했습니다. 이들은 집의 크기와 지형, 바람의 방향을 살펴 아궁이와 고래, 개자리, 굴뚝의 높이와 위치를 정했습니다.
연기가 잘 빠지면서도 열이 너무 빨리 달아나지 않게 만드는 것이 솜씨의 핵심이었습니다. 불길이 지나가는 길이 지나치게 짧으면 열이 굴뚝으로 빠져나가고, 너무 길거나 좁으면 연기가 막히고 불이 잘 타지 않았습니다.
좋은 온돌은 불을 세게 때는 것보다 불과 연기가 천천히 흐르도록 길을 만드는 기술에서 완성되었습니다.
아랫목과 윗목의 온도가 달랐던 이유
아궁이에서 가까운 쪽은 뜨거운 열기가 먼저 닿았기 때문에 가장 따뜻했습니다. 이곳을 아랫목이라고 불렀습니다. 반면 굴뚝과 가까운 쪽은 열기가 어느 정도 식은 뒤 도착해 상대적으로 서늘했습니다.
겨울이면 가족들은 아랫목을 중심으로 모였습니다. 밥그릇을 이불 밑에 넣어 따뜻하게 보관하고, 젖은 양말이나 장갑을 말렸습니다. 몸이 아픈 가족이나 연세가 많은 어른에게 가장 따뜻한 자리를 내어드리기도 했습니다.
아랫목은 단순히 온도가 높은 장소가 아니라 가족이 서로를 배려하는 생활문화가 쌓인 자리였습니다.
아궁이와 연탄이 사라지게 된 이유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연탄은 우리나라의 대표적인 가정용 연료였습니다. 그러나 일산화탄소 중독 위험이 컸고, 연탄을 수시로 갈아야 하는 불편함도 있었습니다.
연탄을 보관할 공간이 필요했고, 타고 남은 연탄재를 매일 밖으로 내놓아야 했습니다. 아궁이와 굴뚝, 고래를 정기적으로 살피지 않으면 안전사고가 생길 수 있다는 문제도 있었습니다.
이후 기름보일러와 가스보일러가 보급되면서 버튼 하나로 실내 온도를 조절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도시가스와 공동난방이 확산되고 주거 형태가 아파트 중심으로 바뀌면서 연탄 아궁이와 굴뚝은 생활공간에서 빠르게 자취를 감추었습니다. 국가기록원은 연탄가스 사고가 크게 줄어든 시기를 가스와 기름보일러가 보편화된 1990년대 이후로 설명합니다.
지금은 어디에서 볼 수 있을까?
아궁이와 굴뚝, 전통 온돌의 구조는 오늘날 민속촌과 전통가옥, 고택, 한옥 체험시설 등에서 찾아볼 수 있습니다. 일부 농촌 주택과 오래된 사찰, 전통 방식으로 복원한 한옥에서는 지금도 아궁이에 불을 지펴 구들을 데우기도 합니다.
온돌문화는 단순한 옛 난방 방식이 아니라 한국인의 주거와 좌식생활, 가족문화가 함께 담긴 생활유산으로 인정받아 2018년 국가무형문화재로 지정되었습니다. 현재 명칭은 국가무형유산 ‘온돌문화’입니다. 국가유산포털
불씨를 지킨 것은 결국 사람의 마음이었다
아궁이의 불은 저절로 밤을 견디지 못했습니다.
연탄 구멍을 반듯하게 맞추고, 공기가 드나드는 틈을 조절하며, 굴뚝에서 연기가 잘 나오는지 살피는 손길이 있어야 불씨가 다음 날 아침까지 이어질 수 있었습니다.
아궁이와 굴뚝 사이에는 눈에 보이지 않는 공기의 길이 있었고, 그 길을 알아보는 데에는 오랜 경험이 필요했습니다. 불의 빛깔과 연기의 흐름만 보고도 집 안의 온기와 위험을 가늠했던 것은 기계가 아니라 사람의 눈과 손이었습니다.
차가운 새벽, 가족이 깨어나기 전에 먼저 아궁이문을 열어보던 누군가의 수고가 있었습니다. 방바닥에 오래 남아 있던 따뜻함은 연탄 한 장의 열만이 아니라, 가족의 밤을 지키려 했던 사람의 노력과 헌신이 함께 만들어낸 온기였는지도 모릅니다.